가방속 녹음기로 몰래 교사발언 녹취…대법 “아동학대 증거능력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1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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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사건에도 영향 가능성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한 학부모가 아이 책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교사의 발언을 녹음했다면 형사재판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오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 씨는 2018년 3~5월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면서 자기 반 학생에게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다”고 말하는 등 16차례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A 씨의 이같은 행위는 ‘담임에게서 심한 말을 들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부모가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키면서 발각됐다. 이후 피해 학생 학부모는 해당 녹음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1심에서는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이에 A 씨는 “타인 간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한 것은 위법증거수집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해당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며 A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A 씨의 발언 중 일부가 피해 아동에 대한 학대 행위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A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수업시간 중 교사가 한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4조에서는 불법 검열에 의해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부모는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한 당사자가 아니고, 교사의 발언은 교실 내 30명의 학생에게만 공개됐을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에 대한 법리 오해가 있기 때문에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쟁점이 유사한 다른 아동학대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에 대한 특수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부모가 몰래 녹음한 수업 내용이 증거로 제출된 바 있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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