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호 식당’이 열린 전시관으로[레거시 in 서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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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계원
조선말기 서화가 이병직 집 ‘오진암’
익선동에서 부암동으로 옮겨 재탄생
‘무계정사’ 터에 자리잡아 붙은 이름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계원에서 전시를 기획한 ‘팀서화’의 김성우 공동대표가 김지원 화가의 대표작 ‘맨드라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계원에서 전시를 기획한 ‘팀서화’의 김성우 공동대표가 김지원 화가의 대표작 ‘맨드라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서울 종로구의 전통 한옥 ‘무계원’은 익선동에 있던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1896∼1977)의 집 ‘오진암’을 부암동으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가 있던 터에 옮겨 ‘무계원’으로 명명됐다.

현재는 전시와 세미나, 기획전시 등에 사용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문과 안채 지붕 기와, 서까래 등은 오진암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 서울 등록음식점 1호가 문화공간으로

20일 오후 ‘오동나무 뿌리와 복숭아 꽃잎’ 전시가 진행 중인 서울 종로구 무계원.
20일 오후 ‘오동나무 뿌리와 복숭아 꽃잎’ 전시가 진행 중인 서울 종로구 무계원.
1953년 한정식집으로 탈바꿈한 오진암은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이자 삼청각, 대원각(현 길상사)와 함께 ‘3대 요정’으로 유명했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7·4공동성명을 논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요정은 문을 닫았고 익선동 부지에는 호텔이 들어섰다. 종로구는 오진암 일부를 복원하면서 부암동 부지에 안채(84㎡), 행랑채(87㎡), 사랑채(127㎡), 별채(85㎡) 등을 지었다. 서울시는 “조선 후기 서울 옛 집의 원형과 1960∼1970년대 인사동의 화려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며 2021년 무계원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무계원에서는 연중 전시회가 열린다. 이달 1∼20일에는 문화예술기획사 ‘팀서화’가 종로문화재단과 공동 기획한 전시 ‘오동나무 뿌리와 복숭아 꽃잎’이 열렸다. ‘팀서화’의 김성우 대표는 “과거 오진암이 무계원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보는 듯하다”며 “최근 현대미술에서 집중하는 부분이 ‘정체성 탐구’이다 보니 무계원이 전시 장소로 알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지, 보자기 등 전통문화 관련 전시가 주로 열리던 무계원에서 현대미술 전시가 열린 건 처음이다.

이 전시에는 김지원 화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작품 ‘맨드라미’, 핵 융합기를 활용해 만든 백정기 작가의 ‘퓨저’, 흙물에 담근 붕대를 고온 가마에서 구워낸 뒤 모양을 내는 서희수 도예가의 ‘무제’ 등 개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선을 보였다.

세미나와 교육 공간으로 쓰이던 사랑채와 창고 역할에 그쳤던 행랑채도 최근 기획 전시에 활용되고 있다. 이날 언니와 함께 전시를 보러 온 안미학 씨(65)는 “예전부터 한옥에 살고 싶다는 꿈이 있어 무계원에 관심이 많다”며 “사랑채 창문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 경치가 한 폭의 그림 같다”고 말했다. 무계원의 대외협력을 담당하는 종로문화재단 김도현 사원은 “부암동에 놀러 온 외국인 등도 전시를 많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 문턱 낮추고 대중 친화 공간으로

부암동 한옥의 상징이 된 무계원은 최근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사전 신청자에 한해 무계원에서 전통 혼례를 치를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올해만 벌써 전통 혼례 10건이 진행됐다. 취식 금지 규제도 일부 완화했다.

최대한 대관을 허용하는 기조로 바뀌면서 도자기 꽃꽂이, 무용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연중 열리고 있다. 비용도 저렴해서 안채, 사랑채, 행랑채는 물론 안마당과 뒷마당까지 2시간 기준으로 4만∼10만 원에 빌릴 수 있다. 무계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시민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서울 1호 식당#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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