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3만 권이 빼곡… “책 보단 ‘문화재’에 가깝죠” [레거시 in 서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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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통문관
일제강점기 인사동에 자리잡고
3대째 ‘고서적 전문서점’ 이어와
현대문학부터 500년 된 고서 보유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의 고서적 전문서점 ‘통문관’에서 이종운 대표가 고서를 꺼내 점검하고 있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점으로 3대째 운영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의 고서적 전문서점 ‘통문관’에서 이종운 대표가 고서를 꺼내 점검하고 있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점으로 3대째 운영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사육신, 생육신의 간찰첩(簡札帖·옛 편지지에 쓰인 서찰을 묶은 작은 책)을 처분하고 싶습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고서점 ‘통문관’에 이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통문관 대표 이종운 씨(54)는 며칠 뒤 고객이 가져온 간찰첩을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살폈다. 이 대표는 “모사품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상당수여서 매번 확인해야 한다”며 “이번에 고객이 가져온 간찰첩도 진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 3대째 이어오는 고서점

통문관은 고서 판매 및 구입의 메카인 인사동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 서점이다. ‘문자가 통하는 곳’이란 뜻의 통문관의 모체는 1934년 창업주 고 이겸로 대표가 인사동에 연 ‘금항당(金港堂)’이다. 광복 직후 통문관으로 상호를 바꾸고 본격적으로 고서 수집과 보급에 주력하기 시작해 3대째 대를 이어 영업 중이다.

6일 찾은 통문관은 서점이라기보다 박물관에 더 가까워 보였다. 서점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책장에 빼곡한 고서들이 보였다. 대부분 글자가 지워지고 표지가 갈라지는 등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현재 통문관에 있는 고서는 약 3만 권. 100∼200년 된 고서가 상당수이고, 500년 가까이 된 고서도 있다. 이 씨는 “이곳에 있는 책은 ‘책’이라기보다 문화재에 가깝다”며 “1980년대 전후에 나온 책이 그나마 신간”이라며 웃었다.

통문관은 6·25전쟁 중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인 국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찾아내기도 했다. 보유한 책 중에는 1400년대 간행된 당나라 시인 두보의 ‘두시언해 초간본’이 유명하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과 같은 현대문학서도 거래된다. 이 씨는 “‘님의 침묵’ 초판본은 최근 경매에서 1억5000만 원을 호가했다”라며 “제작 연대와 희귀성에 따라 한 권에 4억, 5억 원에 달하는 책도 있다”고 했다.

책 보관 방법도 특이하다. 서점들은 보통 책을 세로로 꽂는데, 통문관 고서들은 가로로 누워 층층이 쌓여 있다. 누운 책들 사이에는 직접 한자로 책의 이름을 적은 메모지가 끼워져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나온 책들은 종이가 뻣뻣해 세워둬도 문제가 없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한지로 된 책이 끈으로 묶인 형태라 세워두면 휘어지기 십상”이라고 했다.

● 통문관에서 판 책 다시 돌아오기도

‘40년 된 신간’을 파는 책방이다 보니 이곳을 찾는 손님 중 일반 독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학자나 문인 등이다. 과거에는 시인 최남선, 국어학자 이희승, 미술사학자 김원룡, 국문학자 이병기 등 국학 연구 대가들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

이 씨에게도 이곳은 단순한 서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98년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을 시작한 이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할아버지가 팔았던 책을 다시 사들였을 때”라고 했다. 이 씨는 “할아버지는 책을 팔 때 가격을 연필로 적어뒀는데, 가끔 손님이 판 책에서 할아버지 글씨가 보이면 조부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통문관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시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고서적 전문서점으로 우리나라 고서 연구에 크게 공헌해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라며 “관훈동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평가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고서#3만 권#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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