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나비’가 된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5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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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위안부’ 끌려가 2002년 인권 활동가 새 인생
수원평화나비, 수요문화제 이어가며 평화·인권 교육
수원시, 할머니 이름 딴 추모 공간 ‘기억의 방’ 조성
이재준 시장 “아픔 치유할 때까지 동행”


수원시가족여성회관에 마련된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입구. 수원시 제공

“제발 싸우지 말고들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여성 평화 인권 활동가 고(故) 용담 안점순 할머니(1928~2018)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수원에 살았던 할머니는 나비 같은 삶을 살았다. 꽃 같던 소녀 시절, 끔찍한 만행으로 짓밟힌 뒤 오랜 시간을 누에고치처럼 움츠려 지냈던 할머니. 하지만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노년에는 용기를 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드러내며 역사의 증언대 앞에 섰다.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작품이 걸려 있다. 수원시 제공


● ‘평화의 나비’가 된 인권 활동가 안점순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구 복사골에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다. 열네 살이던 어느 날,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쌀가마에 올라간 소녀는 그대로 트럭에 실려졌다. 울며 붙잡던 어머니를 뒤로하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일본 군인들로부터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목숨을 부지했다.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3년을 보내고 나서야 광복을 맞았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나이 열아홉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은 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남자가 싫어 결혼은 하지 않았다. 6·25 전쟁으로 피난을 가서도 빨래와 식당일 등을 전전했다. 전국 각지를 옮겨 다니며 살아가던 할머니는 환갑이 넘어 조카가 있는 수원에 정착했다. 조카의 도움으로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는 했지만,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찾은 시민들이 할머니의 활동이 담긴 자료를 둘러보고 있다. 수원시 제공

인권 활동가 ‘안점순’의 날갯짓은 일흔다섯이 된 2002년 시작됐다. 피해자 인권 캠프에서 피해자들과 아픔을 나눈 뒤 수요집회 등에 참석하며 다시는 같은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국제기구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국제심포지엄에서 증언도 하며 인권 활동가로서의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할머니의 노력에 감명받은 수원시민들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3월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소녀상이 건립됐다. 이를 계기로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됐다. 안점순 할머니와 수원시, 수원평화나비는 피해자 인권 회복과 평화운동을 위해 발을 맞추며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도 했다.

2018년 3월30일, 안점순 할머니는 고단했지만 아름다웠던 삶을 마감했다.

수원평화나비가 매달 첫 번째 수요일 낮 12사 수원시 올림픽공원에서 진행하는 수요집회 모습. 수원시 제공


● 아픈 역사 기억하는 마지막 불씨 ‘수원 수요문화제’

안점순 할머니가 영면한 뒤에도 수원평화나비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수원 수요문화제와 평화인권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수원 수요문화제는 수원평화나비 활동의 중심이자 살아있는 역사다. 수요문화제는 2017년 5월 시작한 이후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매달 첫 번째 수요일 낮 12시에 열린다. 이달 2일 76회를 진행했다. 지역 단위 수요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수원이 유일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은 것이다.

수원평화나비는 수원시민들에게 ‘위안부’ 역사의 아픔을 지속해서 알리는 평화인권교육도 진행 중이다. 2018년부터 자체적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에 특화된 강사를 양성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내용은 여성과 전쟁, 평화 등이다.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상징과 의미부터 피해자들의 이야기 등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인권 교육은 연간 50회 이상 진행돼 시민에게 기억의 중요성을 알린다. 청소년 평화나비 활동을 지원하고, 안점순 할머니를 비롯한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노력도 쉬지 않는다.

김향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는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그동안 팬데믹으로 주춤해진 청소년 평화나비 활동을 되살릴 수 있도록 활동을 집중하고, 인권 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서 김향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가 할머니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수원이 기록한 역사 ‘안점순 기억의 방’

수원시는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을 딴 추모 공간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안점순 할머니의 숭고한 발자취를 기록함으로써 그의 삶을 통해 후손들이 되새겨야 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오래도록 전수하기 위해서다.

기억의 방은 수원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 안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 3년 만인 2021년 8월 문을 열었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문화관 1층 미술실로 활용하던 48㎡ 남짓 공간에 안점순 할머니의 발자취가 담겼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순이의 이야기와 수십 년 만에 세상에 나와 평화를 부르짖은 평화운동가 안점순의 이야기가 가득 채워졌다.

기억의 방 입구에는 안점순 할머니의 흉상(기림비)이 관람객을 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소녀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수원지역의 한 공동주택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기증한 것이다. 안 할머니의 초상화와 생전에 사용하던 지팡이와 옷가지, 마작 등의 물건도 전시돼 있다.

수원시민들이 기증한 소녀상과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힌 작품이 전시된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내부. 수원시 제공

기억의 방안은 보랏빛이다. 안점순 할머니의 삶을 상징하는 꽃 ‘용담’의 색이다. 용담의 꽃말은 ‘정의, 추억, 당신이 힘들 때 나는 사랑한다’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픈 삶을 정의로 승화한 할머니를 상징한다.

왼쪽 벽면에는 할머니의 사진과 증언을 통해 기록된 생애 기록이 짧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벽 끝에는 쌀자루 무게를 재는 저울이 놓여 있다. 저울에 올라서면 프로젝터에서 영상이 시작된다. 쌀집 앞에서 영문도 모르고 강제로 연행된 열네 살 순이의 비극이 시작된 것을 재연하는 극적 장치다. 오른쪽 벽에는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순이의 경로가 표시된 지도도 마련됐다.

안점순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한 관람객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메모를 남길 수 있는 소통 창구도 있다. 우체통 옆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보세요”라고 적힌 함의 버튼을 누르면 답장이 나온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남긴 말씀이다. “난 돈 싫어, 사죄를 하란 말이야(황금주 할머니).”,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야 해요(길원옥 할머니).”,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보고 싶어요(안점순 할머니).” 등이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이달 13일 장안공원에서 열린 ‘제11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기억이 역사의 정의
광복절 하루 전날인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날(1991년 8월14일)을, 201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수원 장안공원에서도 이달 13일 제11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을 기념한 행사가 열렸다. 수원평화나비가 주최하고 수원시가 후원했다. 부제는 ‘기억이 역사의 정의다’였다. 풍물굿, 역사 뮤지컬, 크로스오버 등 공연, 용담 안점순 사진전, 기림일 11주년 기념전, 주요 친일 인물 소개 등 전시가 마련됐다. 종이로 평화의 소녀상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위안부’의 아픔을 기억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수원은 안점순 할머니와 시민의 저력으로 소녀상을 세운 역사가 있다”라며 “수원평화나비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지난 10년간 노력해준 덕분에 역사가 잊히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조영달기자 dalsar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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