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근 상병의 희생, 軍 안전불감 근절 계기 돼야 한다[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7일 1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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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고 채수근 상병이 실종된 경북 예천군 석관천에서 해병대 관계자들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불과 몇 년 전까지도 6·25 전쟁 때 사용하던 수통을 썼던 군대인데…. 뭘 기대하겠어요.”

이달 19일 오전 10시 반경 경북 예천군 석관천 옆 모래밭. 한 50대 주민이 씁쓸한 표정으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똑같다. 저것 보라. 여전히 장병 안전은 뒷전인 게 우리나라 군대”라며 한숨을 내 쉬었다.

이 주민의 시선은 석관천을 향해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 1사단 고 채수근 상병(20)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 곳이었다.

● 14시간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채 상병

15일 예천 등 경북 북부권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산사태 등이 발생해 주민 여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해병대는 18일부터 장병 1200여 명과 상륙장갑차 등을 투입해 대대적인 실종자 수색을 실시했는데 이틀째 날 채 상병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기자는 이날 채 상병이 살아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14시간 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채 상병을 찾은 곳은 실종 지점에서 무려 5.8㎞나 떨어져 있었다. 수마(水魔)가 일으킨 물살은 그만큼 거셌다.

채 상병의 사망이 확인된 후 오전에 들었던 주민의 넋두리가 계속 떠올랐다. 실제로 현장에서 본 해병대원들의 작업복장은 안전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해병대를 대표하는 빨간색 체육복 상의에 하의는 전투복, 장화가 전부였다. 구명조끼는 고사하고, 서로 묶어 떠내려가는 것을 막을 로프도 없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이 말 그대로 맨몸으로 물 속에 들어갔던 것이다.

반면 석관천 물살은 한눈에 봐도 거세 보였다. 상류에서 내려 온 나무 한그루가 성인 남자가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속도로 떠내려갈 정도였다.

● 15년 전에도 그랬다

기자도 15년 전 군 생활을 할 당시 대민 지원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장병들의 안전을 누구도 책임지는 것 같지 않았다.

당시 홍수 피해를 입은 농가에 복구 작업을 하러 갔는데, 장화도 신지 못한 상태에서 가축 분뇨와 토사가 뒤엉킨 곳에 발을 담궜다. 피부병에 걸려 다리가 벌겋게 부어올랐는데 가려워서 긁다 생긴 상처가 아직 흉터로 남아 있다.

며칠 후 채 상병이 사고를 당하기 전 상관이 “수심이 가슴까지 올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무리하게 작업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채 상병과 같은 부대원의 모친이라고 밝힌 여성은 기자에게 “사고 당시 아들도 현장에 있었는데, 한 지휘관이 부대 상관에게 ‘수심이 깊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작업이 강행됐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직접 구명조끼를 구입해 현장에 있는 해병대원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해병대 측은 작업에 투입한 장병들에게 안전장치 대신 ‘실종자 발견 시 14박 15일의 포상 휴가를 주겠다’며 수색을 독려했다고 한다.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에 군인이란 이유로 외출을 통제받는 장병들에게 포상휴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한 보상이다.

물이 가득 불었고 물살까지 거셌던 하천에선 실종자 수색 작업 전반에 걸쳐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은 군 당국이 두고두고 돌이켜야 할 대목이다. 눈물로 아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채 상병의 부모도 당국에 대책 마련을 당부하는 편지글을 남겼다. 채 상병 부모는 “철저한 원인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 규정과 수칙 등 근본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 또 안전한 임무수행 환경과 장비들을 갖추는 등 강고한 대책을 마련하길 부탁한다”고 했다.

명민준 기자
명민준 기자
문득 생각나 27일 전화해 보니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현재 오래된 수통은 대대적 교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수통 내부를 닦아 쓸 수 있는 형태의 신형 수통을 보급하고 있다”고 했다.

교체속도가 더뎌 ‘바뀌지 않는 군’의 상징이었던 수통도 이처럼 변하고 있다. 이제는 생명과 직결된 장병들의 안전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할 때다. 갓 스무살을 넘긴 젊은이의 희생이 이번에도 헛되게 지나간다면 너무 애통할 것 같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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