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겐 색다른 경험, 문화예술인에겐 꿈 펼칠 무대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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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분야 투자-지원하는 기업
미술작품 구독 서비스 ‘오픈갤러리’… 예술 향유 문턱 낮춰 새 시장 개척
국악 인재 발굴 ‘무아엔터테인먼트’… 다양한 음악적 시도로 관객과 소통
장애인 예술인 지원 ‘SK에코플랜트’… 클래식 연주단 창단해 일자리 제공

K팝과 K드라마는 이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예술 콘텐츠가 됐다. 이런 바람을 타고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국내 기업도 해마다 느는 추세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최근 발표한 ‘2022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2073억4400만 원이다. 2021년에 비해 15.8%(약 283억 원) 늘었다. 아예 문화예술 지원 서비스를 사업화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복지까지 결합해 사회공헌에 힘쓰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 ‘그림 구독’으로 미술시장 확장
미술작품 구독(대여) 서비스를 통해 작가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오픈갤러리’ 직원들이 그림을 설치하고 있다. 오픈갤러리
미술작품 구독(대여) 서비스를 통해 작가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오픈갤러리’ 직원들이 그림을 설치하고 있다. 오픈갤러리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문을 연 그림 구독(대여) 서비스인 ‘오픈갤러리’다. 오픈갤러리는 국내외 역량 있는 전업 작가 1600명의 원화 작품 5만여 점을 온라인으로 대여해 주는 플랫폼이다. 작가들은 오픈갤러리와 2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매달 약 6000점의 그림이 이를 통해 소비된다. 누적 고객은 10만 명이 넘는다.

오픈갤러리는 ‘구매’가 아닌 ‘구독’으로 미술 시장의 문턱을 낮췄다.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42)는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높은 비용 때문에 갤러리 전시를 하지 못하는 작가와 가격 부담에 선뜻 작품을 구입하지 못했던 고객을 연결해 주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유명 작가 작품에만 쏠렸던 기존 미술 시장의 거래 관행을 깨고, 누구나 미술을 손쉽게 향유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컨설팅사 출신인 그가 10년 넘게 미술 시장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몰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트페어(미술품 장터)나 미술관, 갤러리 방문객이 연간 10%씩 증가하는데, 대중적인 미술 시장은 커지지 않더라고요. 창업 전 미술계 관계자 100명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결국 제대로 된 플랫폼의 부재가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박 대표)

최근에는 ‘아트테크’(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 서비스도 시작했다. 10년간 축적된 미술 작품별 수익률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품을 선정해 미술품 투자를 원하는 고객에게 판매하고, 그걸 다시 위탁받아 대여하는 서비스다. 박 대표는 “작가들이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려면 ‘팬덤’이라는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며 “아트테크는 미술 시장에 이런 팬덤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악에 K팝 시스템 도입
국악과 현대음악을 결합시킨 국악 밴드인 ‘무아엔터테인먼트’가 공연하는 모습. 무아엔터테인먼트
국악과 현대음악을 결합시킨 국악 밴드인 ‘무아엔터테인먼트’가 공연하는 모습. 무아엔터테인먼트
국악에 K팝 시스템을 접목해 눈길을 끄는 기업도 있다. ‘무아엔터테인먼트’는 국악계의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것부터 맞춤형 콘텐츠 기획·제작, 음반 제작 및 유통, 아티스트 활동 지원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소셜벤처’(사회적 기업)다.

한승민 무아엔터테인먼트 대표(28)는 “국악은 ‘발전’이 아닌 ‘보존’에 초점이 맞춰져 시장이 작아지고 보존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면서 “신진 국악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무대를 만들고자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계에서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2021년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연극, 뮤지컬, 클래식, 국악 등 공연계의 매출 규모는 1168억 원에 이른다. 이 중 국악의 매출 규모는 4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0.3%에 불과했다.

한 대표는 무아엔터테인먼트 소속 국악 밴드인 ‘경성구락부’의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경성구락부는 국악과 현대음악을 혼합하는 ‘크로스오버’ 음악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경기민요를 부르는 남창(男唱)이 발라드 창법으로 고음을 내지르고, 가야금 거문고 등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몸을 흔든다. 한 대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목표로 다양한 편곡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아동복지시설 선덕원을 찾아 아이들 앞에서 연주를 펼치고 있는 SK에코플랜트의 장애인 클래식 연주단. SK에코플랜트 제공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아동복지시설 선덕원을 찾아 아이들 앞에서 연주를 펼치고 있는 SK에코플랜트의 장애인 클래식 연주단. SK에코플랜트 제공
기업이 직접 장애를 가진 문화예술인을 지원하기도 한다. 에너지 기업인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문화예술 분야 장애인 일자리 확대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장애인 클래식 연주단 창단식을 개최했다.

단원으로 뽑힌 청년 연주자 7명은 모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지만 약 10년간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악기를 전공한 음악인들이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장애로 인해 직업 선택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그림 구독#오픈갤러리#무아엔터테인먼트#국악 인재 발굴#sk에코플랜트#장애인 예술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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