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악몽 잊을라 했는데”…양정마을 주민들 장마에 ‘넌더리’

  • 뉴시스
  • 입력 2023년 7월 19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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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피해 복구 여전…붕괴 제방 보수 공사 진행 중
이장 "트라우마 번진 듯…안전한 마을 만들어달라"

“마을 사람들은 비만 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제방부터 오르고 본다오.”

19일 오후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그간 쏟아진 장맛비가 무색할 정도로 햇빛이 내리쬐고 있는 상황에 전용주 마을 이장(58)은 어두운 표정으로 제방을 바라봤다.

파란 방수포가 덮인 제방 일부 구간을 바라본 그는 한숨을 깊이 내몰아 쉬더니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반대편 하늘을 바라봤다.

전 이장이 바라본 제방은 3년 전인 2020년 8월 8일 붕괴됐던 자리.

사고 2년 만인 지난해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복구 공사가 시작된 제방은 현재 장마철 빗물에 의한 유실을 막기 위해 방수포로 응급 조치를 해둔 상태다.

서시천과 맞닿는 제방 바깥쪽은 석재 타일로 마감된 상태지만, 복구 공사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 최근 장맛비가 쏟아지면서 마을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서시천과 섬진강 사이 합류부에 자리잡은 마을에서는 2020년 8월 7일부터 이틀간 400㎜ 폭우와 인근 댐 방류 등으로 30m 높이 제방이 무너졌다.

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가 하면 축산업에 종사하는 40여 농가가 기르던 소들이 떼죽음을 당해 수천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수해 복구 작업이 진행, 보상금 지급 절차가 마무리되고 현재 제방 보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광주·전남에 쏟아진 비는 마을 주민들이 가까스로 잊고 지내온 3년 전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앞서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광주·전남에 머무른 정체전선은 구례 지역에만 누적 585㎜에 달하는 비를 쏟아냈다.

해당 기록이 관측된 곳은 양정마을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5㎞ 밖에 떨어지지 않은 성삼재다.

일주일 가까운 기간 동안 비가 쏟아지자 3년 전이 떠오르는 듯 마을 주민들은 하루를 마다않고 제방으로 올랐다.

넘실거리는 흙탕물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는가 하면 먼 산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자책했다.

전날에도 전남 동부권을 중심으로 밤사이 최대 400㎜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전해지면서 주민들이 냉가슴을 앓았다.

엇나간 예보에 가까스로 안도한 주민들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장마가 끝나지 않은 탓에 언제든 3년 전 악몽이 떠오를 수 있다며 몸서리쳤다.

전 이장은 비가 올 때마다 불안과 걱정을 안고 제방으로 오르는 주민들의 행동이 트라우마에 버금간다고 토로했다.

생기를 잃은 눈으로 제방 위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자신 또한 쉽사리 수해 당시 기억을 떨칠 수 없다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전 이장은 “수해 직후 정부에서 진행된 저금리 대출로 잃어버린 소만큼 송아지들을 샀다. 기껏 키워 팔 때가 되니 현재 소값이 폭락해 본전은커녕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상황”이라며 “비만 온다고 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생채기가 깊게 남은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은 수해 당시 겪은 고통, 완전하지 않은 복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 등 삼중고를 달고 살고 있다. 주민들이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주는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구례=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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