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고 나가라고 해서 출근 안 했다” 법원, 부당해고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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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7월 6일 0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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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를 쓰라는 회사 간부의 말을 듣고 출근하지 않은 직원을 내버려 뒀다면 이는 사측이 해고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제1행정부(이준명 수석부장판사)는 버스기사 A 씨가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은 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씨는 2020년 1월 한 전세버스회사에 입사해 통근버스 운행을 담당하면서 두 차례 무단결근했다가 그해 2월 중순 회사 관리팀장으로부터 사표를 쓰고 집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재차 사표를 쓰라는 팀장의 말에 ‘해고하는 것이냐’고 재차 확인했고, 팀장은 다시 사표를 쓰고 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A 씨는 이날 팀장과 말다툼 이후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관리팀장은 A 씨와 말다툼하기 몇 시간 전 A 씨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A 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관리상무를 데리고 A 씨를 찾아가 열쇠를 직접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사측은 A 씨가 출근하지 않아도 문제 삼지 않다가 석 달 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자 그제야 “근무 태도를 질책한 것일 뿐 해고한 사실이 없다. 근무 태도를 질책했던 것일 뿐 해고한 사실은 없으니 복귀하고 싶으면 즉시 근무할 수 있다”며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 근무 독촉 통보’를 했다.

이에 A 씨는 중노위를 상대로 재심 판정을 취소할 것과 사측(피고 보조참가인)에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복직 전 부당해고 기간 임금 상당액을 선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노위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A 씨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중노위 역시 기각하는 재심 판정을 했다.

1·2심은 관리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고, 사표 쓰라는 말은 우발적인 발언이라며 A 씨의 주장을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부는 “해고는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 A 씨에게 버스 키 반납을 요구하고 회수한 것은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도 원고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3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A 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뒤에야 출근을 독촉했다는 점 등을 볼 때 대표이사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추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 2월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은 원고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며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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