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살인’ 공포에 ‘N잡러’ 비대면 전환…중개 플랫폼 전체 손봐야

  • 뉴스1
  • 입력 2023년 6월 5일 15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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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6.2/뉴스1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6.2/뉴스1
‘또래 살인’ 정유정 사건을 계기로 과외 애플리케이션(앱)과 같은 재능을 사고 파는 일명 ‘재능 거래 플랫폼’의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검거된 정유정은 과외 중개 앱을 통해 혼자 사는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지목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과외 등 중개 앱을 이용했던 재능제공자들은 대면 수업을 온라인 강의 등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플랫폼 업체들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관행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특히 앱 이용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의 정의를 시대에 맞게 관련 법을 손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앱은 아직 자체 개선 단계…전문가 “법 개정도 필요”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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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과외를 어디서 구하고 어디서 해야 안전할까요”

일본어 과외로 용돈을 벌고 있는 이재령씨(23·가명)의 말이다. 그는 최근 부산에서 일어난 ‘또래 살인’ 피해자가 과외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탈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에 이같이 반문했다.

이씨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당장 앱 탈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학생들과 계속 과외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원하는 시간대에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아서다.

또 과외비의 25~30%까지 내야하는 중개 수수료가 초반에는 부담스럽지만 이런 앱이 아니면 학생을 구할 방법이 거의 없다. 이씨는 앱에 가입하기 전 직접 발품을 팔면서 다른 사이트 여기저기에 글을 올려봤지만 연락을 한통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원래도 화상 과외를 선호하지만 이제 시범 과외도 화상으로 해야겠다”며 “최대한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고 개인 정보를 숨기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당장 탈퇴를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앱 차원에서 정보 불균형 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중개 앱을 통한 범죄는 꾸준히 벌어져왔지만 관련 업체들은 아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다.

지난해 8월에는 20대 남성이 과외 앱을 통해 대학생을 집으로 유인한 뒤 성폭행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전과 2범이었던 피의자는 과외 앱의 특성을 활용해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정이 이용한 중개 앱의 경우 강사로 등록하면 대학교 학생증, 사진, 졸업장, 신분증 등을 제출해야 한다. 또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출신 중·고등학교, 고교 내신 성적 등을 낱낱이 보여준다.

반면 학생이나 학부모로 가입할 경우 과외 학생의 나이, 원하는 과목, 시간대, 그리고 휴대전화 인증 절차만 거치면 된다. 강사의 개인정보는 과도하게 노출된 데 반해 신원조차 확인하지 않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대로 선생님의 정보를 받아 보는 셈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앱 운영업체는 개선책으로 “학생·학부모의 신원 인증을 강화하고, 선생님의 프로필에서 거주 지역, 개인 사진 등을 필수 입력 사항에서 선택 사항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개인정보 전문가인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상 플랫폼 본인이 중개만 한다고 말하고 책임을 안 질 수 있다는 걸 고지하면 면책 대상이 된다”며 “결과적으로 이제 플랫폼 자체 개선과 함께 해당 법안에 대한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앱 중개 피해 구제 신청 해마다 늘지만…보호 장치는 ‘아직’
중개 앱이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경각심은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와 프리랜서 등이 재능을 사고 파는 일명 ‘재능 거래 플랫폼’에도 퍼져가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기준으로 중개 앱 가입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이용자 상당수는 아직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실제로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를 개인·기업과 연결해주는 대표 플랫폼 3개사를 통해 접수된 피해 구제 신청은 지난해 상반기 31건이다. 지난 △2018년 6건 △2019년 12건 △2020년 20건 △2021년 31건을 기록하는 등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는 플랫폼에서 재능을 구매하는 이용자가 피해구제 신청을 하더라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들 구매자는 법적인 소비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소비자기본법은 소비자를 ‘사업자가 제공하는 물품이나 용역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재능거래 플랫폼에서 자신의 재능을 판매하는 이들은 사업자 등록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구매자가 소비자로 인정 받을 수 없어 법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한국소비자원 측은 “피신청인이 사업자가 아닌 개인일 경우 도와드리고 싶어도 도움을 드릴 수 없다”며 “피신청인이 사업자인 경우라도 폐업을 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피해구제가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플랫폼 스스로가 피해 예방을 위해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오늘날 사건 이전에 당근마켓, 에어비앤비 등 P2P(개인간) 거래를 중간에서 유통시켜주는 업체들이 일련의 개선 과정을 겪고 나아지고 있다”면서도 “중간 플랫폼의 의무를 더 강화시켜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건 어떤 종류의 플랫폼이든 사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은 개인 대 개인간의 경우 소비자보호법에서 말하는 소비자로 인정받지 못해 보호를 못받지만 사실 플랫폼과의 거래에서는 소비자가 맞다”며 “결국 플랫폼에 어떤 책임을 지울건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혹은 학생 입장에서도 선생님의 정보를 제공 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의 정보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며 “실제로 공급자와 수요자의 알고리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플랫폼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할 때”라고 제언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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