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한정된 피자와 무한 뷔페 피자의 차이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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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사용시 제약 생기는 ‘경합성’… 요금 안 내면 이용 못하는 ‘배제성’
누군가 더 먹으면 모자라는 피자… 강력한 경합성 가진 재화로 분류
요금 안 내도 되는 공중화장실… 배제성 없어 정부가 나서 관리

총 8조각으로 이뤄진 피자를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때 누군가가 더 많이 먹으면 나머지 사람은 더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경쟁 시스템을 ‘경합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총 8조각으로 이뤄진 피자를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때 누군가가 더 많이 먹으면 나머지 사람은 더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경쟁 시스템을 ‘경합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설과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 한바탕 전쟁을 각오해야 합니다. 먼 거리를 오가며 피로, 졸음과 싸워야 하는 체력전에, 사람들이 덜 몰리는 시간을 찾아 새벽에 출발해야 할지, 저녁 늦게 출발해야 할지 심리전도 치열합니다. 그래도 대략 선택의 기로는 두 종류로 압축되었던 것 같습니다. 막히지만 최단 거리인 고속도로로 갈 것인가, 약간 돌아서 가지만 덜 막히는 국도로 우회해 갈 것인가입니다. 다행히도 몇 년 전부터 명절 연휴 기간에 한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줘서 유료 도로냐 무료 도로냐의 선택 고민은 사라졌습니다.

● 유료냐 무료냐에 이용자 태도 달라져
명절에 차량이 몰리는 유료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통행료를 내야 하고 치열한 경쟁도 해야 한다. 반면 인적이 드문 도서지역 국도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경쟁도 필요 없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재화 또는 상품의 속성입니다. 똑같은 고속도로인데 막히느냐 막히지 않느냐, 유료냐 무료냐에 따라 도로의 성격과 이용자의 태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도로에 차량이 많아 꽉 막힐 때는 ‘거북이걸음’으로 이동합니다. 이럴 때 내 차 앞에 차량이 끼어들게 되면 그나마 조금씩 가던 움직임도 잠시 멈추게 됩니다.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안전운전을 다짐하던 마음도 자꾸 끼어드는 차들이 얄미워지면서 경적을 울릴까 말까 마음은 좁쌀만 해지고 양보심은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도로를 이용하는 나의 태도가 타인의 도로 이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속성을 ‘경합성’이라고 합니다. 피자 한 판을 네 명이 나누어 먹을 때 대략 한 사람당 2조각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눈치 없는 사람이 3조각을 먹게 되면 나머지 세 사람 중 한 명은 1조각밖에 먹지 못합니다. 아주 강력한 경합성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경합성이 있다’ 또는 ‘경합성이 있는 재화’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전혀 막히지 않는 도로, 무한히 제공되는 뷔페식당(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이런 식당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에서의 피자는 경합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비(非)경합성이 있다’ 또는 ‘경합성이 없는 재화’라고 표현합니다.

고속도로는 이용 요금을 내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용 요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요금을 내지 않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고속도로에는 모든 나들목에 톨게이트(요금소)를 설치합니다. 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자를 먹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 피자는 없으니까요. 고속도로, 피자는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사람은 이용하거나 먹을 수 없는 재화 또는 상품입니다. 이러한 속성을 ‘배제성(또는 배타성)’이라고 하고, ‘배제성이 있다’ 또는 ‘배제성이 있는 재화’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도로를 건설했지만 외국인이 이용하더라도 막지 않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강과 바다의 물고기는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금지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낚시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비배제성(또는 비배타성)이 있다’ 또는 ‘배제성이 없는 재화’라고 표현합니다.

● 인터넷-이동통신망은 “요금재 혹은 클럽재”
이제 두 가지의 속성을 확인했으니 각각의 속성이 ‘있고 없고’에 따라 총 네 가지의 경우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첫째, 경합성과 배제성이 모두 있는 재화, 서비스 또는 상품입니다. 대부분의 개인 소유의 재화 또는 상품은 여기에 속합니다. ‘사적 재화’, 또는 ‘사유재’라고 합니다.

둘째, 경합성은 있는데 배제성이 없는 경우입니다. 강과 바다의 물고기, 깨끗한 공중화장실이 여기에 속합니다. 요금을 내지 않은 사람의 이용을 막을 수 없어 배제성은 없지만, 누군가가 물고기를 많이 잡아가면 뒤에 오는 누군가는 물고기 수확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누군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면 뒤에 오는 누군가는 다른 공중화장실을 찾아 이동하거나 밖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타인의 이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합성이 있는 겁니다. 이러한 재화, 서비스 또는 상품을 ‘공유 자원’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경합성은 없는데 배제성은 있는 경우입니다. 뻥 뚫린 유료 고속도로, 빈자리가 많이 있는 극장, 유선 인터넷망, 이동통신 서비스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새로 이용자 몇 명이 늘어도 전혀 티도 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재화, 서비스 등을 ‘요금재’ 또는 ‘클럽재’라고 합니다. 좀 쉽게 풀어 설명하면 통행료, 입장료를 받거나 회원제로 운영되는 상품입니다. 일정 요금을 내고 구독하는 것도 대부분 여기에 속합니다.

넷째, 경합성과 배제성이 모두 없는 경우입니다. 막히지 않는 무료 일반 도로, 공원, 가로등, 경찰의 치안 서비스, 군인의 국방 서비스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대부분 국가나 지방 정부가 관리하고 제공하는 재화 또는 서비스입니다. 이러한 재화, 서비스를 ‘공공재’, ‘공공 서비스’라고 합니다.

사적 재화는 수급이 비교적 원활하고 시장의 자율 조정에 의해 충분히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반면 나머지 세 경우는 시장 원리만으로는 불안정하고 정부의 개입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공유 자원의 경우에는 주인이 없다고 인식되기 때문에 남획과 남용이 횡행해지고 결국 황폐화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됩니다. 어족 자원이 고갈되거나 깨끗했던 공중화장실이 망가지는 경우가 이와 같습니다.

‘한가한 유료 도로’와 같이 경합성은 없고, 배제성은 있는 경우는 사업성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약간의 우위를 선점하면 손쉽게 시장을 독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각종 규제를 통해 독과점을 예방하고 과열 경쟁이 없도록 관리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공재는 이용을 원하는 실수요자는 많은데 막상 구입하여 설치할 사람을 찾으면 선뜻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얼마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내 돈을 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공익을 위해 대신 구입하여 설치하고 제공합니다.

이철욱 광양고 교사
#경합성#배제성#유료#무료#요금재#클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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