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잔해속 희미한 목소리…7시간 사투, 할머니 손이 보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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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서 구조활동 펼친 유지훈 소방관

한국긴급구호대(KDRT) 1진으로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투입된 유지훈 구조대원(왼쪽)이 11일(현지 시간) 오전 60대 여성을 구조하기 위해 잔해 더미를 확인하고 있다. 유 대원은 20여 명의 구호대와 함께 7시간의 구조 작업을 펼친 끝에 이 여성을 구해냈다. 소방청 제공
한국긴급구호대(KDRT) 1진으로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투입된 유지훈 구조대원(왼쪽)이 11일(현지 시간) 오전 60대 여성을 구조하기 위해 잔해 더미를 확인하고 있다. 유 대원은 20여 명의 구호대와 함께 7시간의 구조 작업을 펼친 끝에 이 여성을 구해냈다. 소방청 제공
“잔해 속에서 희미하게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아, 이 분은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한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1진으로 튀르키예(터키) 지진 피해 현장에 투입됐던 유지훈 대원(39)은 23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지 활동 중생존자를 포착한 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 “사투 끝 130시간 만의 기적”

유 대원은 튀르키예에 도착한지 이틀만인 11일(현지시간) 오전 7시경 “잔해 속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는 현지 주민들 외침을 듣고 달려갔다. ‘목소리가 들린다’는 제보를 수 차례 듣고 달려갔다 허탕을 친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 했다. 하지만 잔해 더미에 귀를 대고 집중하자 희미하게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지진 발생 후 72시간 골든타임이 이미 지난 시점이라 마음이 급해졌다.

유 대원은 일단 주변의 구조팀 대원 20여명을 불러 모았다. 붕괴된 건물은 총 5층인데 할머니는 지진 당시 3, 4층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측면에선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무너진 건물 위에서부터 망치와 드릴 등을 이용해 잔해를 한겹씩 깨고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유 대원은 교대도 마다하고 잔해 제거 작업에 앞장섰다. 그는 “추위에 떨고 있을 할머니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방청 제공
소방청 제공
구조를 시작한지 6시간 만인 오후 1시경 할머니 남편이 먼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할머니 손이 보였다. 잔해물을 헤치고 30cm 가량 구멍을 더 파자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이어 가슴까지 잔해물 더미에 갇힌 할머니 모습이 나타났다.

유 대원은 “이때부터 구조 작업에 더 신중을 가했다”고 했다. 작업 과정에서 할머니 몸에 압력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시간 가량 조금씩 잔해물을 제거한 끝에 결국 할머니를 구출해냈다. 매몰된지 130시간 만이었다. 유 대원은 “너무 기쁘면서도 함께 계시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튀르키예 대원들과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눴다”고 말했다.
● “딸 구한다는 생각으로 최선 다해”

유 대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튀르키예 1진 구호대 118명은 9일(현지시간)부터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구조활동을 펼쳤다. 쉼 없이 활동한 끝에 총 8명의 생존자를 구조한 뒤 18일 귀국했다. 현재 2진 구호대가 현지에 파견돼 있다.

1진 구호대가 목격한 튀르키예 지진 현장은 말 그대로 ‘지구 종말 영화 같은 풍경’이었다. 하루 수차례 여진이 이어져 위험에 빠질 뻔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유 대원은 “여진이 나면 호루라기로 신호를 주는데 건물 안에서 밖으로 뛰쳐 나오면서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고 돌이켰다.

유 대원은 힘들 때마다 한국에 있는 두 딸(7세, 1세)을 생각했다. 유 대원은 “현지에서 여섯 살짜리 딸이 탈출하지 못했다면서 오열하며 구조를 부탁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딸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또 다시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겠다”고 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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