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써” 반복 언급한 간부…대법 “일방적 해고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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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2월 20일 1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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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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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간부가 “사표 쓰라”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이후 출근하지 않은 직원을 회사가 방치했다면 이는 묵시적 해고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전세버스 기사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A 씨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 씨는 2020년 1월 한 전세버스 회사에 입사해 통근버스 운행을 하다가 같은 해 두 차례 무단으로 결근했다. 이에 회사 관리팀장은 A 씨를 강하게 질타했다.

관리팀장은 같은 해 2월 11일 A 씨에게 “사표 쓰고 가”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또 같은 날 오전에는 A 씨의 버스 키를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날 해고 시키는 것이냐”고 묻는 말에 관리팀장은 “응”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A 씨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버스회사는 A 씨가 출근하지 않았지만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A 씨는 3개월 뒤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회사의 일방적 의사로 근로계약관계가 종료됐다고 보기 어려워 정식 해고는 아니라고 보고 A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회사는 A 씨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자 “해고한 적이 없으니 복귀하고자 한다면 즉시 근무해라”라고 통보했다. 또 A 씨에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 근무 독촉’을 통보했다.

A 씨는 사측에 부당해고 인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복직 통보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싶다면 앞선 3개월 동안의 임금을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뒤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버스회사의 손을 들어 줬다. 관리팀장에게 해고할 권한이 없고 “사표 쓰라”는 표현은 화를 내다 우발적으로 나온 발언이라며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관리팀장이 A 씨에게 ‘사표 쓰고 가’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한 것은 A 씨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단순한 우발적 표현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A 씨는 자신이 해고를 당한 것으로 생각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관리팀장의 요구에 따라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버스 키 반납을 A 씨에게 요구하고 회수한 것은 근로자의 노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문제의 말다툼 이후 A 씨가 3개월 넘게 출근하지 않아 회사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A 씨에게 출근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이미 대표이사가 A 씨의 해고를 묵시적으로 승인·추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관리팀장이 A 씨를 해고할 권한이 없더라도, 관리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이같이 발언했다”며 “관리상무는 일반적으로 근로자 해고 권한이 있다고 볼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발언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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