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데이터 축적한 AI, 대화하듯 법률 상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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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변호사 3만명 시대 풍속도
법률서비스에 IT 접목 ‘리걸테크’ 바람
유사한 판결 사례 검색은 기본… 美선 입법 확률 예측 서비스도
변협 “가입 변호사 징계” 압박에, 국내 법률 플랫폼 서비스는 주춤

“개업 직후 의뢰인 확보가 어려웠는데 플랫폼 업체를 통해 1개월 동안 약 200명의 의뢰인과 연결됐어요. 이제는 플랫폼 없는 변호사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개업 변호사 이모 씨)

최근 변호사 업계에선 정보기술(IT)과 결합된 법무 서비스, 즉 리걸테크가 각광받고 있다.

리걸테크에는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유사한 판결 사례를 제공하는 법률·판례 검색 시스템, 인공지능(AI)이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서비스, 법적 용어를 전문으로 해설하는 서비스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변호사들은 리걸테크를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거나, 플랫폼을 효과적인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일부 리걸테크의 경우 변호사의 업무를 대신하며 변호사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커지는 리걸테크 시장
리걸테크 업계 규모는 최근 2년간 가파르게 성장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랙슨에 따르면 지난해 9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 리걸테크 업체 수는 7000여 곳에 달한다. 이들이 받은 투자 규모는 누적으로 113억 달러(약 14조2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48억 달러(약 6조 원)가량의 투자가 최근 2년 동안 이뤄졌다.

2013년 설립된 미국의 ‘피스컬노트’는 대표적인 리걸테크 기업으로 꼽힌다. 정부와 의회가 만드는 정책과 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피스컬노트는 새 법안이 발의되면 입법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로벌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법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 AI가 법률자문을 해 주는 ‘두낫페이’ 등 세계 곳곳에서 이미 대화형 AI 서비스 프로그램 ‘챗GPT’와 견줄 수준의 리걸테크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리걸테크 개발 및 도입 움직임이 꾸준하다. 법무법인 율촌은 소속 변호사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15년 로펌 차원의 리걸테크 연구개발 부서 ‘e율촌’을 신설했다. 또 율촌이 영국계 로펌과 협업해 만든 ‘프로젝트 지니’는 건설 계약 위반 위험성을 미리 진단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피상속인 재산을 단순 상속하는 경우와 사전 증여하는 경우 상속세 실효세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를 돕는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했다.
●규제에 막힌 국내 리걸테크 시장

국내 리걸테크 성장을 막는 장벽도 적지 않다. 로앤컴퍼니가 2014년 출시한 로톡은 “가입 변호사를 징계하겠다”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압박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가 로톡 가입을 막기 위해 대한변협이 만든 내부 규정 일부를 위헌으로 판단했지만 지난달 52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영훈 대한변협회장(59·사법연수원 27기)은 취임 직후부터 ‘사설 플랫폼 퇴출’을 강조하고 있다.

판결문 등 법률 데이터가 부족해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챗GPT 수준으로 국내 리걸테크 업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려면 미확정 판결문 전면 공개 등 법무부와 법원의 적극적 규제 혁신 시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 데이터 개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개입하면서 속도가 더딘 상태”라며 “국민과 소비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법무부, 변협 등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ai#법률상담#리걸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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