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없고 아이만 있는 대한민국 출산통계[이미지의 포에버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8일 1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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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병원 신생아실 모습.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동아일보DB
병원 신생아실 모습.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동아일보DB
“출산모의 수를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출생아 수 말씀하시는 거죠?”

얼마 전 정부에서 출산정책을 담당하는 곳과 통화를 하며 ‘출산모의 수’를 물었더니 담당 공무원이 되물었다.

“아니요, 아기(출생아) 수가 아니라 아기를 낳은 엄마(출산모)의 수요.”

여전히 갸우뚱 하는가 싶던 상대방은 뒤늦게 “아” 하더니 “그건 없는 것 같은데 한 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 출생아 통계는 있는데…
출생아 통계를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포탈사이트에 ‘출생아수’라고만 쳐도 연도별 수치가 나온다. 내가 첫 아이를 출산했던 2012년 48만5000명이었던 한 해 출생아 수는 꾸준히 감소해 2021년 26만1000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수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20만 명대 초반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새 출생아 수가 반 토막 난 것이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표현한 지표인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떨어졌다. 전 세계를 통틀어 최저치다.

그렇다면 산모의 수는 얼마나 줄었을까?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알 수 없다. 출생아 통계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산모 통계는 내가 아는 선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도 같은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때도 산모 수 자료는 없다는 답을 들었다. 설마, 매년 나오는 출생통계 어딘가 있는 거 아닐까. 정부는 매년 출생과 관련해 다양한 통계를 합쳐 출생통계집으로 펼쳐낸다. 출생아 수, 출산순위별 출생아 수, 지역별 출생아 수 등등. 잘 보면 산모와 관련한 통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연령대별 산모 수 통계가 있다. 그런데 그냥 산모 수가 아니라 연령대별 인구 1000명당 산모 수가 몇 명인지 환산한 값이다. 예를 들어 2021년 20대 후반 산모 수는 1000명 당 45.8명, 30대 초반은 115.3명, 30대 후반은 76.2명 이런 식이다. 각 연령대마다 인구수가 다른 만큼 연령별 산모 수를 정확히 비교하기 위해 환산값을 쓴 것일 테다. 하지만 환산값이라는 것은 결국 가상의 수치다. 정작 각 연령대별 산모 수가 정확히 몇 명이라는 것인지, 총 몇 명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출생아 수나 산모 수가 비슷한 거 아니냐고? 비슷할 순 있겠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쌍둥이 등 다태아를 출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2021년 기준 다태아의 수는 1만4000명으로 전체 출생아 수의 5.4%다. 적지 않은 수다. 특히 최근 만혼과 노산 영향으로 과학의 힘을 빌려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태아의 비율도 갈수록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시험관 시술의 경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보통 한 번에 여러 개의 배아를 이식하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 자연임신 때보다 다태아를 낳을 확률이 19배에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인공시술이 늘수록 산모 수와 출생아 수의 간극이 점점 더 커져갈 것이라는 뜻이다.

드물지만 아기가 출산 도중 혹은 출생신고 전 사망하는 일도 있다. 이 경우 출산을 한 산모는 있지만 그의 출생아는 집계되지 않을 것이다.

산모의 수는 출생아의 수와 같지 않다. 산모가 다태아를 출산할 수도 있고 출생 등록 전 출생아가 사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
산모의 수는 출생아의 수와 같지 않다. 산모가 다태아를 출산할 수도 있고 출생 등록 전 출생아가 사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
● 산모=출생아를 낳는 사람?
이쯤 되면 산모의 수가 ‘뭣이 중헌디?’ 하고 의아할 수 있다. 어차피 출생 관련 통계를 산출하는 이유는 저출산 정책을 짜는 데 있어 현실을 가늠하고 수혜자를 파악하려는 용도인데 출생아 수 통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내가 산모 수에 대해 궁금해 하자 한 정부 관계자도 이해가 안된다는 듯 되물었다. “산모는 출생아를 낳은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그 수나 증감 추이가 비슷할 텐데 굳이 따로 알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단순히 산모 수의 문제가 아니다. 산모 수를 곧바로 답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산모 중심의 통계나 조사, 정책이 없었다는 방증이기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산모는 그저 ‘출생아를 낳는 사람들’일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같은 인식을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2016년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행정자치부가 243개 지자체의 출산율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출산지도’ 홈페이지를 공개했는데 맹비난을 받은 끝에 결국 얼마 안 가 문을 닫고 말았다. 지자체별 출산통계와 출산지원 서비스 정보를 제공한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지역별 ‘출산 성적표’를 공개한 것이 문제였다. 특히 누리꾼들은 시군구 가임기 여성 분포도와 가임기 여성 순위를 매긴 자료에 분노했다. ‘여자가 애 낳는 도구냐’며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2016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선보인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의 한 코너. 지역별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표시한 도표로 여성 수가 많을수록 색깔이 짙게 표현돼있다. 동아일보DB
2016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선보인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의 한 코너. 지역별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표시한 도표로 여성 수가 많을수록 색깔이 짙게 표현돼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0월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됐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면서 그 업무 대부분을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한다고 밝히면서다. 일부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여성이란 가임기 출산 의사가 있는 일부 여성으로 한정되는 것이냐’거나 ‘사실상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공식화한 것과 다름없다’고 힐난했다.

다자녀 엄마가 된 이래로 지금까지 “애국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앞선 인식들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말의 기저에는 ‘요즘 같이 애 키우기 힘들다고 애를 안 낳는 시대에 나라에 보탬이 될 노동력을 네 명이나 생산했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 부모 중심의 조사와 정책도 필요해
아이를 낳은 여성도 부모이기에 앞서 인간이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것도 결국 부모이기에 정부가 효과적인 저출산 정책을 짜고 싶다면 출생아뿐 아니라 부모가 될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확한 파악과 분석이 필요하다. 산모의 수와 대상자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하지만 현재 우리 출산 정책의 대부분은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출생한 아이가 몇이고,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출산가구에 대한 각종 지원 금액과 혜택, 제도가 갈리는 식이다.

아이를 가질까 고민하는 예비 부모, 부부들은 대부분 ‘현재 아이를 낳을 상황이 아니어서 낳기가 꺼려진다’고들 한다. 직장, 주거, 그밖에 사회경제적 상황 등 모두 부모의 사정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해소하고 싶다면 출생아 상황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출생아를 낳는 사람들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들 대한 맞춤 지원을 찾아야지 않을까. 출생아 부모의 소득, 교육 수준, 그밖에 여러 사회경제적 상황을 조사하고 어떤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지, 혹은 낳지 않는지 파악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출산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출생아를 낳는 부모의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동아일보DB
저출산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출생아를 낳는 부모의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동아일보DB

얼마 뒤 산모 수를 문의했던 곳에서 이메일로 답을 보냈다며 연락이 왔다. 이메일을 열어 보니 ‘임산부 등록 현황’과 ‘분만 건수’가 도착해있었다. 임산부가 모두 출산에 이르는 것은 아닐 테니 임산부 등록 현황은 참고 수치일 테고 내가 원한 산모 수에 등치되는 자료는 분만 건수인 듯했다. 분만 건수란 말 그대로 분만이 이뤄진 건수이니 이게 실제 산모 수와 같은 지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사람 명수가 아니라 ‘건수’라니, 다시 한 번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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