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 억울한 피해자, 더는 양산 말아야 [기자의 눈/이청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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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아·사회부
이청아·사회부
“요즘도 제 땅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일일이 풀어헤쳐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어요. 쓰레기를 처음 배출한 업체라도 찾으면 처리 비용을 받아낼 수 있을까 싶어서….”

최근 기자와 만난 경북 영천시의 불법 폐기물 투기 피해자 이모 씨(46)는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2019년 봄 이 씨 소유의 공장 부지에 3900t의 쓰레기가 산처럼 솟아올랐다. 쓰레기를 투기한 임차인은 잠적했고, 영천시는 이 씨에게 처리 책임을 지웠다. 비용 수억 원을 감당하지 못한 이 씨는 직접 투기 조직 일당을 쫓다가 신변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불법 폐기물 투기 범죄에 당한 피해자들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들이 무고하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주민 민원이 빗발치고, 환경오염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단 세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운 이상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토지주에게라도 처리 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혈세를 보전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와 지자체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해서는 안 된다. 날벼락처럼 처리비용 수억∼수십억 원을 떠맡게 된 피해자들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지경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과거 토양환경보전법 역시 과실이 없는 시설 소유주에게도 오염된 시설 정화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012년 헌법재판소는 “소유주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면책하는 방법이나, 책임에 한도를 두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법 등으로 (소유주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무고한 소유주의 책임과 고통을 덜어주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폐기물관리법 역시 같은 취지의 개정이 필요하다.

불법 폐기물 투기 일당과 이들에게 고의적으로 폐기물을 넘기는 폐기물 처리업체 역시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쓰레기산 처리 비용 20여억 원을 떠안고 파산 직전에 놓인 피해자 A 씨(50)는 이렇게 물었다. “법은 선량한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왜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형사 고발까지 하는지요….” 이제는 국가가 피해자 뒤에 숨어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나서서 불법 폐기물 투기와 전쟁을 치를 차례다.


이청아·사회부 기자 clearlee@donga.com
#쓰레기산#억울한 피해자#불법 폐기물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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