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년의 역사가 잠든 달서구에서 선사시대로 시간여행 떠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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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을 여행]
관광 콘텐츠 ‘선사시대로’ 신청 시 문화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탐방
수변공원-수목원-캠핑장도 인기

거대 원시인 조형물인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을 구경하는 시민들.
거대 원시인 조형물인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을 구경하는 시민들.
“아파트와 상가, 공장이 가득한 전형적인 현대 도시.”

대구 달서구 길 한복판에 처음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이 도시의 첫인상이다. 대구의 대표적인 산업지역인 달서구는 전체 면적의 5분의 1가량이 산업공단으로 이뤄졌다. 대구 전체 아파트의 4분의 1인 14만8000여 채가 빽빽이 들어찬 대표적인 주거지역이기도 하다.

현대화된 익숙한 풍경에 실망하기엔 이르다. 부지런히 걸어 도시 곳곳을 누비다 보면 기대 이상인 ‘시간 여행길’에 오를 수 있다. 달서구는 알고 보면 과거 선사시대 옛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이 가득한 마을이다. 현대 문명과 선사시대가 소통하는 달서구 길 곳곳을 걸어본다.

○ 2만 년 역사가 잠든 길


인구 53만 명의 거대 자치구인 달서구는 대구의 급성장 과정에서 탄생했다. 1980년대 급격한 산업 발달로 산업단지가 들어섰고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 이후 도심 인구가 외곽으로 분산되면서 차세대 주거지로 급부상했다. 대규모 택지개발이 한창 이뤄지던 2006년은 잠들어 있던 2만 년의 역사가 깨어난 해다.

당시 월성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유물 1만3000여 점이 발견됐다. 이런 무더기 유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당시까지 대구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역사가 5000년 전쯤이라는 학계 연구 결과가 있었다. 선사시대 유물 출토는 대구 삶터의 시작점을 2만 년 전까지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발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유물이 출토된 월배지역 일대는 구석기부터 시작해 신석기, 청동기 유적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구청장은 “해발 500m 이상의 남부산지와 하천인 진천천과 대명천으로 인해 생겨난 넓고 평탄한 지형이 과거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적합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추게 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달서구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은 차로 30∼40분 거리의 수성구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선사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달서구는 선사시대 유적을 관광 콘텐츠로 만든 역사 문화 탐방길인 선사시대로(路)를 운영하고 있다. 5명 이상 단체 관광객이 신청하면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며 옛이야기를 아주 상세히 들려준다. 2014년 시작한 이 관광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5만여 명의 탐방객이 다녀갔다. 선사시대 유적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당시 시대상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교육적 효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자세한 사항은 달서구 홈페이지(dalseo.daegu.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사시대로는 모두 3개 코스로 이뤄져있다. 먼저 A코스는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입석에서 출발해 고인돌과 돌널무덤 유적지 구간까지 이어진다. 약 800m 거리이며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걸으면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출발지인 선사유적공원에서는 고인돌 등 1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기념사진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다.

B코스는 월암로 청동기유적에서 출발해 조암로6길 구석기 유적지로 이어진다. 2.5km 거리이며 왕복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관광객이 원하는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C코스도 운영한다. 상인로 월곡역사박물관을 비롯해 진천 상인 월성동 일대 선사시대 유적 가운데 원하는 장소를 골라 둘러볼 수 있다.

선사시대로에는 문화해설사를 대동하지 않고도 옛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볼거리가 여기저기에 있다. 길 자체가 말 그대로 거리박물관이다.

선사유적공원 입구 왕복 6차로 도로 한편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는 이색 도로 안내판이 있어 눈길을 끈다. 천 조각으로 중요 부위만 가린 털북숭이 남성 원시인 조형물이 도로안내판 위에 걸터앉아 돌도끼로 안내판을 내리찍는 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정말로 과거에서 온 듯한 원시인이 도로 안내판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같이 보일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 조형물은 대구가 낳은 세계적인 광고 제작자 이제석 씨가 디자인했다.

진천동 대구수목원 입구 삼거리에서도 탄성을 유발하는 대형 조형물이 있다. 길이 20m, 높이 6m 크기로 깊이 잠든 원시인을 형상화했다. 반쯤 땅에 묻힌 얼굴이 눈에 띄는 이 작품은 2018년 설치한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이라는 명칭의 조형물이다. 달서구가 2020년 이색 캠페인에 활용하면서 이미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조형물에 초대형 마스크를 씌운 것이다. 이후에도 여름 휴가철에는 밀짚모자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서는 산타클로스 모자 등을 씌우며 지역의 명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진천역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봐야 할 포인트다. 역 3번 출입구에 설치된 대형 붉은간토기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하게 지붕에 박힌 모습이다. 역 내부 벽면에는 유물 발굴 장면을 재현한 트릭아트가 그려져 있어 색다른 포토존 역할을 한다.

매년 10월경 열리는 선사문화체험축제 때는 훨씬 재밌는 구경거리가 많다. 축제 기간 유물 발굴체험을 비롯해 석기 제작, 사냥체험 등을 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선사시대 OX 퀴즈와 미션 스탬프 투어 등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선사패션쇼는 선사시대 의상을 손수 제작해 나만의 개성 있는 복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다. 마임 퍼포먼스와 마술쇼, 가수 공연 등도 매년 준비해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 24시간이 모자란 달서구의 매력


월광수변공원. 대구 달서구 제공
월광수변공원. 대구 달서구 제공
선사시대로 이외에도 달서구에는 보물 같은 장소들이 여러 곳이다. 도원동 대구보훈병원 남쪽에 있는 월광수변공원은 호수인 도원지 수변에 조성된 근린호수공원이다. 2020년 9월 멸종위기 1급으로 분류돼 있는 아기수달 2마리가 발견됐을 만큼 호수 물이 맑다.

호수 주변에는 복숭아나무 등 40종 2만1992본의 향토 수종이 식재돼 있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공원 내 주요 시설은 음악분수와 월광교, 산책로, 장미길, 다목적운동장 등이 있는데, 주로 산책과 데이트를 즐기는 방문객이 많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오르기도 했다. 공원 주변에는 대구에서도 내로라하는 맛집이 즐비해 허기를 채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대곡동 대구수목원은 전국 처음으로 쓰레기 매립장을 생태적인 식물공간으로 복원한 곳이다. 환경부가 전국 자연생태 우수 사례지로 선정했다. 약초원과 활엽수원, 침엽수원, 야생초화원, 화목원, 방향식물원, 괴석원, 죽림원 등 21개 테마로 다양한 식물을 전시하고 있어 걸으면서 힐링하기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여기서 차로 20여 분 거리의 이곡동 장미공원은 그리 크지 않지만 매년 5월 다양한 모습의 장미들이 꽃을 활짝 피우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달서별빛캠핑장은 카메라만 들면 그림이 되는 그야말로 도심 ‘뷰 맛집’이다. 송현동 앞산 자락 옛 예비군훈련장 자리에 조성됐다.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만큼 급히 짐을 풀지 않아도 여유롭게 베이스 캠프를 꾸리고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카라반 14대가 있고 오토캠핑장 14개 사이트, 데크캠핑장 15개 사이트, 숲속캠핑장 11개 사이트로 구성돼 있다. 부대시설로는 물놀이장과 취사장, 샤워장 등을 갖췄다. 일몰 이후 밤이 되면 앞산 자락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도심 야경이 압권이다. 입소문이 여기저기 퍼져 캠핑장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이 구청장은 “달서구를 찾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미 ‘도심 속에서도 여유와 치유를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칭찬이 자자하다”며 “24시간 이상 충분한 계획을 세워서 달서구의 가을 정취와 매력에 흠뻑 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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