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로맨스였고 넌 사기였네…3일간의 ‘로맨스 스캠’

  • 동아닷컴
  • 입력 2022년 7월 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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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피해자들의 취약점은 바로 ‘외로움’, ‘관심에 대한 갈급함’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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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I saw your picture. You have beautiful eyes. I want to know about you.”
(안녕하세요, 당신의 사진을 보고 눈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알고 싶어요.)

그렇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로맨스 스캠’의 시작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런 메시지를 받아봤을 것이다. 아주 쉬운 영어거나 포털사이트에서 번역기를 돌린 듯한 한국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픽’하고 웃으며 이들의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무시한다.

‘로맨스 스캠’은 소셜미디어 안에서 이성 혹은 동성에게 호감을 산 후 결혼 등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로맨스(Romance)와 스캠(Scam·사기)의 합성어이다. 최근 국내에서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가 늘어나며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 중인 기자도 가끔 이런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대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번엔 ‘수락’ 버튼을 눌렀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가해자들이 온라인상에서 도대체 어떤 말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뒤흔들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송금하게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A(DM을 보낸 남성)와의 대화는 약 3일간 이어졌다. 오전 6시, 정오, 오후 8시 하루 세 번씩 대화를 나눴다. 첫날은 취미, 이상형 등 소개팅 자리에서 나올법한 질문이 나왔다. 자신이 키운다고 주장하는 반려견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네가 원하면 언제든 보러 오라”는 말과 함께.

또 어떤 스타일의 남성을 좋아하는지 물어왔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답하자 A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며 조금씩 수작질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운동이나 여행 등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했다.

적극적인 답변에 ‘나한테 넘어왔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A는 곧바로 구구절절한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재미교포라고 주장한 A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 부친과 함께 살았으며 몇 년 전 부친마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후 A는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 큰 좌절감에 빠져 갑작스레 한국행을 결정해 현재 한 지방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대화를 하며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라도 바라는 듯, A는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무척 강조했다. 더불어 “친구는 너 하나뿐이다”라고도 했다.

다음날이 되자 A는 ‘자기야’(Sweetie)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는 불편하다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대화를 하자고 해 그러자고 했다. A의 대화는 급속도로 ‘핑크빛’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너를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 ‘너와 함께 어디를 가고 싶다’ 등 마치 연인에게 보낼법한 이야기를 했다. 이에 대화 도중 ‘철벽’을 치기도 했지만 A의 애정 공세는 끊이지 않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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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일이 되자 언제쯤 돈을 요구할지 궁금해졌다. 여러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탐색해 본 결과 보통 일주일은 지나야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고 해 그때까지 기다려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로맨스 스캠으로 메신저 아이디를 해킹당했다는 한 블로거의 글을 우연히 보게 됐고, 같은 날 기자 역시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킹당할 뻔했다. 결국 A에게 미안하다는 글과 함께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A의 소셜미디어와 메신저 계정을 차단해버렸다. 다행히 금전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없었다.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온라인상에서 만난 A는 ‘적극적인 소개팅 상대’에 가까웠다. 사기라는 것을 확신하고 대화 내내 의심을 했기 때문에 그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일 뿐, 누군가는 A의 달콤한 말에 장밋빛 미래를 펼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로맨스 스캐머’ 편에 나왔던 한 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들과 나눈 대화를 보면 취미, 종교 등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가해자가) 강조한다”며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공통점이 많을수록 경계심을 낮추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신뢰를 쌓는 게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뇌과학자는 피해자들이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금액을 송금한 것에 대해 “사랑을 할 때, 이성적인 생각과 논리적인 생각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며 “판단하거나 정보를 수집할 때 논리적인 계산을 안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며 로맨스 스캠을 당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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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 전문가인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사기 피해가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 ‘군종 속의 고독’을 꼽았다. ‘군중 속의 고독’은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이 사용한 용어로 대중 사회 속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이르는 말이다.

오 교수는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들의 취약점은 바로 ‘외로움’, ‘관심에 대한 갈급함’이다. 일반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이 말을 걸면 사람들은 대개 의심부터 한다. 사진 속의 인물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지 않나”며 “하지만 관심받고 싶어 하는 갈망이 강한 사람은 그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그 사람을 믿어버리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그런 취약점을 갖고 있는 피해자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가해자들의 수법을 낚시에 비유하며 “낚시를 할 때 낚싯대를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두고 기다린다. 낚싯대의 미끼를 봐도 의심하고 물지 않는 물고기가 있는 반면 아무렇지 않게 미끼를 무는 물고기가 있다”며 “가해자들은 이런 수법이 시쳇말로 ‘먹힐 때’ 성취감을 느끼고 범죄를 계속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하는 사람이 바보다’, ‘그런 걸 왜 믿냐’라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는 이 ‘로맨스 스캠’을 당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 사람 중 하나라면, 당장 멈춰라. 그건 진짜 ‘로맨스’가 아니다. ‘사기’일 뿐이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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