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금연, 개인의 선택으로만 봐선 안돼[기고/김덕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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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이사
김덕수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이사
흡연으로 인해 한 해 6만 명이 사망하고, 사회·경제적 손실 규모도 12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수치를 통해 흡연의 폐해를 가늠하게 되는 순간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경각심은 흡연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호기심을 억제하거나, 기존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되는 폐해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계속하는 이들에 대해 비난 수위를 높이는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흡연의 시작과 중단이 모두 흡연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에 제기한 담배소송에서 1심 법원은 ‘흡연을 시작하는 것뿐 아니라, 흡연을 계속할 것인지 등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흡연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 결과가 사망이든, 질병이든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미국 담배회사들은 1994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담배의 중독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연방법원 명령에 따라 국민들에게 “담배를 피울 때 니코틴은 두뇌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금연이 매우 어려운 이유다.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흡연이 치료가 필요한 중독질환인 이상, 흡연 중단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합리적인 선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흡연의 시작 역시 개인의 선택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공단이 제기한 담배소송에서 흡연 피해자들은 대부분 30년 이상 흡연한 뒤에 폐암 또는 후두암이 발병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생존한 피해자들 상당수가 처음 흡연을 시작할 당시에 담배가 해롭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담배의 유해성이나 중독성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접한 바 없었다. 또 이후 담뱃갑에 표시된 경고 문구만으로는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지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담배의 위해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던 상태에서 흡연을 시작한 흡연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은 흡연을 시작한 이후엔 중독으로 인해 흡연을 중단할 수 없었다. 흡연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흡연의 책임을 흡연자에 전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이제라도 흡연자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위해성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담배의 위험성을 부인하거나 축소했다. 광고나 담뱃갑 포장의 문구와 그림 등을 통해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해 왔다. 흡연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한 만큼 담배회사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과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제35회 세계금연(5월 31일)의 날을 맞이했다. 공단도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담배소송을 시작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준비를 해 본다.

김덕수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이사


#흡연#담배 중독성#세계금연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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