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대형건물의 냉난방 에너지, 한강이 해결해 줍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근 주목받는 친환경 ‘수열에너지’
하천-바다에서 물 끌어와 열 관리… 관로 등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온실가스 배출 크게 줄일 수 있고… 냉각탑 필요 없어 도심 환경 도움
국내선 아직 생산량 많지 않지만… 물 공급 인프라 뛰어나 장래 밝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는 하루 약 5만 t의 한강물을 공급받아 수열에너지를 생산한다. 이곳은 전체 냉난방 에너지의 약 10%를 수열에너지로 대체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는 하루 약 5만 t의 한강물을 공급받아 수열에너지를 생산한다. 이곳은 전체 냉난방 에너지의 약 10%를 수열에너지로 대체했다.
21일 서울 서초구 동작대로 남단에 위치한 한강홍수통제소 지하 기계실. 팔당댐에서 수도권으로 연결되는 광역 관로(管路)에서 끌어온 물이 실타래처럼 얽힌 지름 20cm의 관로를 타고 열교환기와 히트펌프로 들어갔다. 이 물은 건물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전달한 뒤 다시 관로로 돌아간다.

이 모습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 하나인 수열에너지가 생산되는 과정이다. 여름에는 물을 통해 건물의 열을 내보내 냉방을 하고, 겨울에는 물에 있는 열에너지를 가져와 난방을 하는 원리다. 지난해 4월 수열에너지를 도입한 한강홍수통제소는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의 약 40%를 수열에너지로 대체했다. 가스나 전기를 사용하는 기존 냉난방 시스템 가동률이 낮아지자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도 30∼40%가량 줄어든 것으로 환경부는 추산하고 있다. 김광렬 한국수자원공사 수열에너지사업부장은 “물의 에너지만 냉난방에 이용하기 때문에 수량이 변하거나 오염원이 유입되는 경우가 없다”고 설명했다.

○ 아직 걸음마 수준인 수열에너지
지하 6층에서 운영하는 약 2만 ㎡ 규모의 에너지센터. 롯데물산 제공
지하 6층에서 운영하는 약 2만 ㎡ 규모의 에너지센터. 롯데물산 제공
1960년대부터 수열에너지를 활용한 주요 에너지 선진국과 달리 국내 수열에너지 도입은 더딘 편이다. 해안가 발전소에서 바닷물을 활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2006년부터 주요 댐 발전소의 에너지 공급용으로 하천수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는 2014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처음 수열에너지를 도입했다. 롯데월드타워의 에너지 생산량은 시간당 3000RT(냉동톤). 1RT는 0도의 물 1t을 24시간 동안 0도의 얼음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 양으로, 약 28m² 공간을 냉난방할 수 있다.

수열에너지 도입이 더뎠던 것은 ‘친환경’이라는 장점이 큰 대신 초기 투자비용이 많고 입지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까지 물을 끌어오는 거리가 멀수록 관로 등의 설치비용이 더 든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 수열에너지 생산량은 2만1258TOE(석유환산톤·1TOE는 석유 1t의 열량)로 2017년 7941TOE 대비 약 2.7배로 늘었지만, 전체 신재생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탄소배출량 감축이 국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 되면서 수열에너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열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면 건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국내에서 배출된 온실가스 7억137만 t 중 21%가 건물에서 발생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수송 분야(14.6%)보다 비중이 높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선 건물의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이 68.7%(2019년)로 전국 평균보다 더 높다. 발전 및 생산 시설이 적은데 주택과 사무용 건물이 밀집한 탓이다.

○ 물 공급 인프라 뛰어난 한국, 수열에너지 유리

해외에서는 주요 강과 호수가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수열에너지 활용도를 높여 왔다. 미국 뉴욕주의 코넬대에선 76m 지하의 물까지 끌어다 쓴다. 캐나다 토론토 인근 온타리오 호수 주변의 수열에너지 생산량은 시간당 7만5000RT에 이른다. 롯데월드타워의 약 25배 규모다.

수열에너지는 도심의 열섬 현상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열을 배출하는 도심의 냉각탑은 여름 도심 온도를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수열에너지는 열이 물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런 냉각탑을 없앨 수 있다.


큰 하천이 많고 물 공급 인프라가 뛰어난 한국도 입지가 나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남유진 부산대 건설융합학부 교수는 “수열에너지는 건물의 냉난방 가동 시간이 길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며 “최근 수도권에 많이 들어서고 있는 데이터 센터나 물류 창고 등에 도입하기에 알맞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최근 민간 건물의 수열에너지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 미래에셋자산운용 등과 공급 협약을 맺고 총 9개 건물에 설계비 1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종민 한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독일 등 유럽에선 건물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의무화하고, 보조금 등 혜택을 늘리고 있다”며 “도심 관로가 잘 깔려 있는 한국은 하천수 활용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냉난방 에너지#한강#수열에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