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 아비규환…재택환자 상태 나빠져도 손 못써”

  • 뉴시스
  • 입력 2021년 12월 13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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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병원에서 병상 대기자가 재택치료를 하던 중 중환자가 발생했는데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응급 병상을 신청하고 보호자에게 119를 부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분은 결국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병원에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뛰어 들어가서 환자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자체에 병상 배정을 요청하거나 보호자에게 119를 부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못하는 의료진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굉장히 힘들다. 무거운 마음에 잠을 못 이룬다는 의료진이 늘고 있다.”

김정은 서울시 서남병원지부장은 13일 보건의료노조가 개최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현재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 현장의 상황에 대해 이같이 증언했다. 현재의 코로나19 대응 체계가 재택 격리를 하며 병상 대기 중인 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지부장은 “병상은 꽉 차 있지만 생활치료소는 반도 안 차있다. 입소 기준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70세 이상은 안 되고, 고도비만도 안되고, 당뇨나 고혈압 환자도 입소할 수 없다. 이 분들이 병상이 없어 집에서만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 분들이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면 손 쓸 방법이 없다. 생활치료소는 의료진이 부족하긴 해도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한다. 이 분들이 생활치료소에 들어가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재택 격리자에게 전화해 재택치료키트를 이용해 산소포화도와 체온, 상태를 확인한다. 그러나 전화해보면 재택치료키트를 못 받은 사람 반이나 된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받았다고 해도 사용법을 못 알아듣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화를 안 받거나 전화를 받아도 ‘병실이 왜 안나냐’고 화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와중에 성희롱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환자 급증으로 의료 현장의 인력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한 다양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전담 병원에서는 환자 급증으로 의료진의 신체적·정신적 상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수경 국립중앙의료원 지부장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간호사들이) 빈번하게 마지막 임종과 사체 관리까지 하고 있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다”며 “임종과 사체관리까지 하고 난 간호사들은 앓아 누워서 한달사이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든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안 지부장은 “국립중앙의료원은 병상 회전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증상이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원내에서 병동 전원과 퇴원이 하루에도 수차례 일어나고 있고, 그 때마다 간호사들이 환자 이송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어 인력이 더 부족한 상황”이라며 “보조 인력 없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업무를 도맡아 한지 2년이 다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로감과 우울증으로 언제 현장을 떠날지 알 수 없다. 조금만 더 참고 같이 가자고 하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반복되는 악순환에 사직이 살 길이라고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환자 병상을 급하게 늘리느라 일반 중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미화 전남대병원 정치부장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11월 행정명령을 통해 (코로나19) 중중증 병상을 본원 16병상, 화순전남대병원 9개 병상을 추가 설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그러면서 뇌졸중 집중치료실과 소아중환자실을 각각 8병상에서 4병상으로 축소했다”고 전했다.

김 부장은 “뇌졸중 집중치료실의 경우 한명의 간호사가 4명의 뇌졸중 환자를 보면서 물 한번 마시거나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하고 있다”며 “응급실에서 올라온 응급환자를 인계시간에 같이 받으라고 하고, 검사나 시술이 끝난 환자를 혼자서 케어하는 등 환자와 간호사 모두에게 비치료적이며 비인권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소아중환자실에는 다른 곳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환자들이 있다. 간호사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면서 식사는 당연히 포기했고 한명의 중환자가 CPR(심폐소생술)이라도 하면 다른 환자는 긴밀하게 볼 수가 없다”며 “우리에게 맡겨진 소아 중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김 부장은 “병원은 상반기 코로나19 환자가 많지 않았을 때 간호사들을 교육하지 않았고 타 중환자실로 파견을 보냈다. 지금 또한 공개 채용을 통해 경력 간호사를 채용하고 있지만 교육을 시키는 등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 않다”며 “병원이 최소한 노정합의의 중환자 인력기준을 충실히 지켰다면 중수본 행정명령에 대응하기 훨씬 용이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드코로나 전환 이후 충분히 환자 급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현섭 이천병원 지부장은 “보건복지부는 11월 초까지 코로나 환자에 대한 인력기준을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전달된 공문의 내용은 권고 뿐이었고, 현장에서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흐름이 현재와 같이 될 것으로 예견해왔고, 복지부는 지금 같은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알고도 이렇게 끌고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부장은 “갑자기 환자가 늘어나면서 지자체에 의료인력을 늘려달라고 얘기해왔지만 그럴 때마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남는 인력을 어쩌려고 그러냐’며 승인해줄 수 없다고 한다. 굳이 인력 충원이 급하다면 파견 의료인력을 보내주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파견 인력은 최소한의 검증이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소한의 산소 처치나 채혈 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쉴틈 없이 면접을 보고 채용을 하고 있지만 인력 기준이 맞춰지지 않아 업무 강도는 최고조로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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