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에도 버티는 이성윤, 文정부 ‘믿는 구석’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2일 1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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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1.5.11/뉴스1 © News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1.5.11/뉴스1 © News1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기소를 권고하고 12일 검찰이 기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버티기 모드’로 들어간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차지하는 이 지검장의 위상이 확고하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보통의 공직자들은 내부 감찰만 받아도 직무에서 즉각 배제되고 징계를 거쳐 조직에서 밀려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지검장은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가 정당하다는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이 나온 후 기소까지 된 상태인데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소를 권고한 수사심의위 결과는 여권에는 피하고 싶었던 악재였지만 이미 그 이전에 수사심의위 논의 결과나 검찰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이 지검장을 계속 중용한다는 방침이 서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사심의위 다음날 서로 약속한 듯이 이 지검장의 현관 출근 행보와 이 지검장을 배려하는 듯한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이어진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야당이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장관 후보자 3명에 대해 청와대가 임명 수순을 밟으며 강공으로 선회한 것도 이 지검장의 버티기 돌입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평소 언론 접촉을 피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으로 출근하던 이 지검장이 수사심의위 다음날인 11일 아침 1층 현관으로 출근한 것은 자신의 건재함을 대내외에 알리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토사구팽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이 지검장이 청와대에 모종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단독 판단인지, 여권 핵심과의 교감 아래 이뤄진 연합작전의 일환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지검장이 현 정부 들어 일관되게 정권 수사를 방어하는 노력을 기울여 온 점에 비춰볼 때 그의 행동이 여권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12일에는 이 지검장이 연가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 수원지검 수사팀이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로서 자신을 기소하는 모양새를 의식해 자리를 피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2일 출근길에 “이 지검장에 대한 직무배제나 징계 등 절차는 구체적으로 구상해본 적이 없다”며 전날과 같이 인사 조치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된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휴가를 낸 12일 오후 서초동 중앙지검 모습.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된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휴가를 낸 12일 오후 서초동 중앙지검 모습.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이 지검장은 최근 차기 검찰총장 인선에서 탈락하고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기소된 상황에 처하는 등 거취를 둘러싼 위기가 가중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권에서 차선책으로 그를 배려하려는 듯한 정황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현 정부 핵심에서 보는 이 지검장의 정치적 비중이 상당함을 의미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총장 최종 4인 후보에 들지 못했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연수원 기수가 3기수 높은 김오수 후보자를 지명함으로써 이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되거나 고검장급인 대검 차장검사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수사심의위가 압도적 의견으로 기소 권고를 의결한 직후에는 검찰을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비판이 쇄도하는 상황에서도 법무장관의 엄호를 받으며 직을 유지하고 있다. ‘검찰 2인자’로서의 권위와 체면은 구기는 것이지만 김오수 총장 취임 직후 단행될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유임 등으로 중용된다면 이 지검장이나 여권으로선 기존에 추진해오던 검찰개혁을 계속 밀고나갈 수 있는 물리력을 검찰 내에 구축하는 의미가 있다. 임기 말 레임덕 우려가 커지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도 비판 여론이 커지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권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 신뢰를 축적한 이 지검장을 통해 정권의 안전을 확보하는 정치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검장은 12일 검찰의 기소 직후 입장을 내고 “저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당시 수사외압 등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며 “향후 재판절차에 성실히 임하여 진실을 밝히고, 대검 반부패강력부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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