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하네” 통역없이 외국인 조사한 경찰…“개선해야”

  • 뉴시스
  • 입력 2020년 11월 23일 12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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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국적 진정인, 통역없이 조사 받아
"모르는 행인이 다가와 욕설·사진 촬영해"
경찰 "진정인이 '밀쳤다'고 인정해 체포"
"한국어 의사소통에 문제 없었다" 주장
인권위 "진정인, 한국 법률용어 잘 몰라"
"경찰청장에게 통역 제공 등 조치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통역 없이 외국인을 조사한 경찰의 행위 등이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23일 인권위에 따르면 모로코 국적을 가진 진정인 A씨는 처음 보는 행인이 자신에게 다가와 욕설을 하며 사진을 찍는 것에 위협을 느껴 행인의 사진 촬영 행위를 막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그러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행인에게는 추후 자진 출석을 권유하고, 피해자인 자신을 현행범 체포한 뒤 파출소에서 통역 없이 조사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같은 진정에 대해 해당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행인은 A씨가 욕설을 하면서 자신의 가슴 부위를 밀치는 폭행을 했다며 처벌을 요구하는 상황이었고, A씨는 상대방을 밀치기는 했으나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밀친 것도 폭행죄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A씨를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설령 A씨가 상대방을 밀친 것을 현장에서 인정했다고 해도 출동 당시 A씨가 이삿짐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던 점, 신분증을 제시해 신원 확인이 충분히 가능했던 점, 당시 A씨를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볼 만한 내용이 없는 점 등을 종합했을 때 추후 자진 출석을 통한 조사를 안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관들이 현장 도착 후 10여분만에 행인에게는 자진 출석하도록 안내하고, 외국 국적의 A씨에 대해서만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합리성을 현저히 잃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A씨를 현행범 체포한 이후 통역 없이 조사를 진행한 점에 대해서는 “당시 A씨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A씨 또한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서 통역 제공이나 신뢰관계인의 참여 없이 조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조사 결과 A씨는 한국에서 8년 정도 거주하면서 한글을 어느정도 읽고 쓸 수는 있으나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길게 말하는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현행범’, ‘피의자’ 같은 법률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당시 파출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봐도 경찰관들과 A씨가 손동작을 하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수차례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의사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인권위는 “특히 당일 경찰서에서 작성된 A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막았을 뿐 몸에 닿지는 않았다’라고 진술돼 있었는데, 경찰관이 작성한 현행범인체포서에는 ‘A씨가 가슴 부위를 1회 밀친 것을 인정했다’고 A씨 진술과는 다르게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외국인의 경우 우리나라 형사절차에 생소하거나 이해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 불이익이나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한국어로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인을 신문하는 경우에도 통역 제공 여부, 신뢰관계인 참여 여부 등을 반드시 확인하고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적극 조치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 형사절차에 대한 안내서 등의 경우 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자료를 마련하고 일선 파출소 및 지구대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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