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벽 패널 접착제 ‘활활’…울산 주상복합 화재 완전진화 왜 늦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9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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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천장 에어컨 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하얀 연기도 흘러나와요.”

울산의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신고가 119에 처음 접수된 건 8일 오후 11시14분. 12층에 사는 한 주민은 신고 뒤 아파트 관리실에도 연락했다. 건물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해당 가구를 방문했을 때도 실내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번 화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분명치가 않다. 12층에서 첫 신고가 들어왔지만 소방당국은 ‘저층 발코니’를 발화점으로 보고 있다. 소방에 따르면 자체 확보한 아파트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12층 천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불꽃이 먼저 시작된 것이 확인됐다.

아파트 관리 직원들이 설명한 당시 상황도 이런 정황을 추정케 한다. 직원 A 씨는 “당직 근무자들이 도착하고 잠시 뒤 소방대원들도 도착했다. 처음엔 냄새는 수상한데 불꽃 등은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이 조를 나눠 위층과 아래층을 점검하고 있던 사이에 해당 집 천장에서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발화점도 찾기 힘들던 화재가 빠르게 번진 건 강풍 탓이 컸다. 불이 건물 바깥으로 번지기 시작하더니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아파트 전체를 타고 피어올랐다. 당시 울산은 8일 오전부터 강풍주의보가 발효됐던 상태. 이 강풍을 타고 불티가 날아가 왕복 10차로 차도 건너편에 있는 대형마트 옥상까지 불이 옮겨 붙었을 정도였다.

특히 아파트 외벽을 꾸미는 알루미늄 패널의 접착재가 화재를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패널은 알루미늄 판 사이를 실리콘 등 화학수지로 접착한 뒤 건물 외벽에 붙인다. 알루미늄 자체도 열에 강하지 않은데다 접착재도 불에 잘 타는 소재다.

임주택 울산소방본부 생활안전계장도 9일 현장 브리핑에서 “알루미늄 패널을 붙이는데 쓰인 가연성 접착제 때문에 급격히 연소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이 불에 그슬린 알루미늄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높이 113m에 이르는 33층 고층 건물이란 점도 화재 진압을 더디게 했다. 울산소방본부는 화재 초기 52m 사다리차를 동원했지만, 건물의 중간 정도까지만 물을 뿌릴 수 있었다. 72m 고가사다리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방 관계자는 “고가사다리차는 부산소방본부에서 지원 받아 9일 오전에야 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대 건물 23층 높이 정도의 화재 진압에 이용할 수 있는 70m 이상 고가사다리차는 전국에 10대뿐이다. 서울과 경기, 인천에 2대씩 있으며, 부산과 대전 세종 제주가 각 1대씩 보유하고 있다.

울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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