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호소인’ 표현 사용한 與와 서울시…생소한 용어 사용한 의도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5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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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서울시는 피해 호소 직원의 신상을 보호하고….”(황인식 서울시 대변인)

“‘피해 호소인’이 겪은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원순 전 서울시장(64)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서울시는 15일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하며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직원 A 씨를 ‘피해 호소 직원’이라고 표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역시 이날 국회 당 최고위원회에서 A 씨를 지칭해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썼다.

진상규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서울시와 여당이 피해자라는 표현 대신 이 같은 생소한 용어를 쓴 것에 대해 “박 전 시장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황인식 대변인은 이에 대해 “‘피해자’라는 용어는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접수가 되고 (조사 등이) 진행이 된 시점에서 쓴다”며 “이 직원이 피해에 대해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말한 것은 없다. 서울시로서는 (해당 사건을) 여성단체를 통해 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A 씨 측과 여성단체들은 피해자 보호 목적으로 쓰였던 ‘피해 호소인’이란 표현이 왜곡된 방식으로 악용됐다며 비판하고 있다. ‘피해 호소인’은 2018년 ‘미투(#MeToo·나도 당했다)’운동 당시 가해자로부터 역고소를 당하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학과 여성단체에서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문화연구소 교수는 ”‘피해호소인’ ‘가해지목인’ 등 간접적인 표현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도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여당 대표가 말한 ‘피해 호소인’의 경우 이 같은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게 여성계의 시각이다. A 씨와 박 전 시장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로 놓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A 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호소인, 피해호소여성 등의 표현에 대해 ”언어의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도 ”피해자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사실을 알렸고 증거들도 일부 제시된 점 등을 종합해볼 때 ‘피해자’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피해 호소 직원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력일 수 있음을 서울시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피해 호소 직원이라고 부른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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