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도움 요청에도…서울시 “그럴 사람 아니다” 묵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3일 21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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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하직원 성추행 사건의 지원을 맡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곧바로 고소를 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 소장은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며 피해를 사소하게 만들어 더 이상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서울시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가해 의혹을 인지하고도 자체적인 진상 규명에 나서지 않고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4년 동안 박 전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는데도, 서울시가 이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피해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인권담당관이나 여성가족정책과 등 공식 경로를 통해 문제제기를 했으면 기록이 남아있을 테니 진상을 파악해보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박 전 시장의 비서로 근무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가해자와의 분리’를 위해 부서 변경을 요구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는 지속적인 피해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호소했고, 동료 공무원이 (박 전 시장으로부터 피해자가) 전송받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성적 괴롭힘에 대해 부서를 옮겨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몇 달 전 피해자의 근무처가 다른 부서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취재를 종합하면 시 직원이 부서 변경 등 전출 신청을 했다면 비서실장에게 요청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든 공무원은 타 부서 전출 신청할 때 부서장과 상의하도록 돼있다. 비서실 소속이었으면 책임자인 비서실장과 상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서울시 비서실장은 박 전 시장의 장례위원회에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 전화 상임대표는 “서울시는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던 직장”이라며 “규정에 의해 서울시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 기구를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2013년 발간한 ‘서울시 성희롱 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피해자 요청 시 독립된 시민인권보호관이 30일 이내에 조사를 완료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10일 안에서 조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특히 가해자가 각 기관의 기관장, 임원급에 있으면 지연 없이 즉시 사건을 조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아직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늘은 고인을 보내드리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문자메시지 외에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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