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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주택가에 만든 ‘주민참여 도서관’… ‘열린 사랑방’으로 인기

입력 2019-11-26 03:00업데이트 2019-11-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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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 <3>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주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들이 사업 기획부터 예산 확보, 운영 등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한 대표적인 ‘공간 복지’ 시설이다. 기존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해 시설을 만들어 과거 주택 테라스로 쓰였던 공간이 뒤편 붉은 벽돌로 남아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은평구 연서로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책장에는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 단행본과 주간지로 빼곡하다. 주말이면 30, 40대 아빠들이 자녀에게 책을 읽히려고 왔다가 정작 본인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신남희 구산동도서관마을 관장은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건물 한쪽 편 2∼4층에 만화자료실을 따로 만들었다”며 “주민들이 도서관을 딱딱하게 느끼지 않고 부담 없이 쉽게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은평구는 주택 8채를 사들여서 5채는 허물고 나머지 3채는 리모델링하며 일부 신축해서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름에 ‘마을’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2015년 11월 개관한 뒤 공부방, 사랑방 등으로 활용되며 지역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6만20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이용객은 2017년 33만 명, 지난해 59만5000명에 달한다.


○ 주민이 사업 기획부터 운영까지 맡아

구산동 주민들은 오랜 기간 마을도서관 건립을 희망했다. 구산동에는 노숙인 요양시설인 ‘은평의 마을’과 장애인학교 ‘은평대영학교’ 등이 있지만 도서관, 미술관 등 주민 문화시설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북권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민들의 볼멘소리마저 나왔다. 급기야 주민들은 2006년 직접 나서서 도서관 건립을 위한 서명 운동까지 벌였고 여기에만 2000명이 넘게 참여했다.

2008년 마침 은평구가 복지시설 건립 등을 위해서 구산동 주택 8채 등 터 1500여 m²를 매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민들은 이곳에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구청에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은평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요구가 없었다면 노인이나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시설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단순히 도서관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건립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먼저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통해 예산을 확보했고 자발적인 준비 모임을 만들어 도서관을 채울 공간, 시설, 서적 등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지역의 현황을 잘 아는 구청이 발주기관과 건축가, 주민들을 연결해 의견을 조율하고 설계에 반영했다.

주민들은 ‘은평도서관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리고 현재 민간 위탁 형태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주민들이 사업 기획부터 예산 확보, 시설 조성, 운영 등 전 단계에 참여한 것이다.


○ 열람실이 따로 없이 확 트인 ‘사랑방’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열람실이 없는 게 특징이다. 보통 도서관들은 공간을 칸막이로 구분하고 책상, 의자 등을 설치해 이용자들이 딱딱하게 느낄 때도 많다. 그 대신 곳곳에 벤치형 의자, 탁자 등을 마련해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공원이나 카페에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한탁영 구산동도서관마을 정보서비스1팀장은 “열람실을 따로 만들면 공간을 독서실로만 사용하려는 이용객이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면학 분위기도 딱딱해지기 마련”이라며 “편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애초부터 개방형 공간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도서관을 매개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중장년층은 시 낭송, 뜨개질 등의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모인다. 시 낭송 모임 주민들은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틀어주는 자체방송 ‘도서관 라디오’에 종종 출연한다. 도서관 한쪽에는 라디오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뜨개질 모임은 도서관 곳곳을 꾸밀 수 있는 소품을 기증한다.

도서관 사서 20여 명은 은평의 마을을 매주 찾아 시설 입주자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대영학교 학부모에게는 장애아동에게 효과적으로 책을 읽어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문화가정 아이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신 관장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활동도 모두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도서관의 문화 혜택을 받은 주민들이 다시 혜택을 다른 주민들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 ‘집에서 가까운 편한 공간’ 구현

공간복지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체육시설, 독서실, 노인정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을 갖춰 주민들이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기존 다세대주택을 허물고 조성한 공간이라 태생적으로 이동거리가 짧다. 또 기존 주택을 허물지 않고 활용해 계단, 벽돌, 테라스 난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정감을 더한다. 주민 고상영 씨(64)는 “동네 다세대주택, 골목길이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감성적으로도 편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직접 방문해 “주택을 허물지 않고 지어서 공공건물이라기보다는 동네의 여느 집과 같다”며 “생활 SOC의 모범”이라고 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2016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과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도 받았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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