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떼 부리는 민원인… 몸살 앓는 대구-경북 지자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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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민원 들어 달라며 소란… 매일 찾아와 욕설, 폭행까지
전문가 “별도 전담팀 구성 필요”

대구·경북 지자체들이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민원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대구 동구가 친절 서비스의 일환으로 종합민원실에 설치한 고객소리함. 대구 동구 제공
대구·경북 지자체들이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민원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대구 동구가 친절 서비스의 일환으로 종합민원실에 설치한 고객소리함. 대구 동구 제공

대구 북구 대현동 주민센터는 북구 공무원들이 가장 기피하는 인사 발령지다. 주민 A 씨(66·여) 때문이다. A 씨는 수십 년간 거의 매일 찾아와 각종 민원을 들어 달라며 떼를 쓰고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분이 풀릴 때까지 고성과 막말을 일삼는다. 혼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인 A 씨는 주민센터 등을 찾아 공무원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일과다.

지난해 11월 북구 공무원이 A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자 한동안 주민센터와 구청 방문은 뜸해졌다. 그러다 최근 전화로 북구 직원들을 괴롭히거나 아예 시청이나 보건소 같은 다른 관공서를 찾아 소란을 피우고 있다. 지난달 23일 대구시 복지정책관실을 찾아 도시락 지원 대상이 되지 못했다며 3시간 가까이 소란을 피우다 청원경찰의 설득 끝에 돌아갔다. 대현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했던 공무원은 “A 씨가 오면 그야말로 주민센터가 초토화된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중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대구·경북 기초단체가 악성 민원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성에 욕설은 기본이고 공무원을 폭행하는 일도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중구는 지난해 3∼8월 민원인 B 씨(52)에게 시달렸다. 자신의 집 앞에 아파트를 재건축하는데 소음과 분진 피해가 심하다며 하루에 전화를 10여 통씩 걸어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구청 행정감사장에 난입하기도 했다. 그해 8월 구청장실에 무작정 들어가려다 이를 막던 공무원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지난해 3월 동구의 한 주민센터에서는 민원인이 의자와 부서 푯말을 집어던지는 난동을 부렸고, 그해 5월에는 서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이 공무원을 폭행했다. 지난해 8월 경북 봉화에서 발생한 면사무소 총기 난사 사건도 일종의 악성 민원인이 일으킨 것이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5월 악성 민원인 대처 방법을 담은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매뉴얼은 민원인이 폭언, 욕설 등을 하면 우선 진정시킨 뒤 1, 2차 경고를 하고 그래도 제지하지 못하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다. 그러나 일선 공무원들은 매뉴얼대로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법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편법에 가까운 방법으로 민원을 처리하기도 한다.

달서구는 도로 확장에 따라 자신의 식당이 철거된 민원인이 최근 수년간 구청장실을 찾아 행패를 부리자 직원들이 1000만 원을 모아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달서구 관계자는 “공무집행 방해로 고발할까도 했지만 민원인이 식당을 접으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등 불우이웃이라고 판단해 성금 명분으로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민원을 돈으로 막으려 했다는 비판적인 시선이 있지만 “오죽했으면 (구에서) 그랬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 구성원이 성금을 모아 민원인에게 전달한 것은 현행 기부금품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서구 안팎에서 찜찜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김순양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이 약자가 되는 시대여서 기초단체 단위에서는 악성 민원인을 대처하기 어렵다. 광역단체 차원에서 중재나 조정을 할 수 있는 전담팀을 꾸리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공무원을 대하는 시민의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악성 민원#고객소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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