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죠”…‘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팽목항 찾은 시민들

  • 뉴스1
  • 입력 2019년 2월 3일 22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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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맞아 귀성객·추모객 발걸음 이어져

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3일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전남 진도 팽목항에 귀성객과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19.2.3/뉴스1 © News1
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3일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전남 진도 팽목항에 귀성객과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19.2.3/뉴스1 © News1
“잊을 수 없죠. 잊어서도 안되고요”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인 전남 진도 팽목항에 오랜만에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섬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과 연휴를 맞아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며 일부러 찾은 추모객들까지 팽목항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설 연휴 전날인 3일 진도 팽목항 여객선터미널엔 양손 가득 선물을 든 귀성객들로 붐볐다. 여객선에 승선하려는 차량들은 300m 넘게 길게 꼬리를 물고 기다렸다.

팽목항 방파제에는 지난해까지 걸려 있던 ‘미수습자 귀환’ 염원을 담은 현수막 대신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귀향 인사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민들은 여객선을 기다리는 동안 세월호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팽목항을 둘러보며 그날의 참사를 떠올렸다.

고향인 진도 조도행 여객선을 기다리던 윤모씨(45)는 부인과 딸 둘, 조카 한 명과 함께 팽목항 방파제를 걸어 나오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년이 다 되지만 올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산다는 그는 매년 두세 차례 고향을 방문할 때면 꼭 팽목항을 들른다고 했다.

윤씨는 “팽목항은 고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현장이라 꼭 들른다”며 “아이들에게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찾는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사는 이모씨(50)는 설 연휴를 맞아 일부러 팽목항을 찾아왔다. 그는 2014년 4·16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다섯 번의 설을 맞이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은 대립구도로 몰고 사회가 갑론을박 싸우는 걸 보며 너무 힘들었다”며 “조용해지면 내려가야지 하다 오지 못했다. 며칠 전 회사에서 재난구조교육을 받을 때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나와 이제야 아들과 함께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선장이나 관계자들의 문제도 분명히 있지만 국가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며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아직까지 재난구조훈련이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살다 최근 진도 조도에 ‘귀촌’했다는 김정희씨(50)는 먹먹한 듯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안산에서 25년을 살다 전복과 인진쑥 재배 일을 하기 위해 1주일 전 진도 조도면으로 귀농했다

그는 참사 당시 단원고에 다니던 2명의 조카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큰집 조카는 생존했고, 작은집 조카는 하늘나라로 갔다. 4.16 참사 당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진 첫 단원고 희생자 고 정차웅군이 작은집 조카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능하면 (팽목항에)오지 않으려고 했다. 사고 현장도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차웅 군의 할머니 소식도 전했다. 김씨는 “89세이던 차웅이의 할머니는 참사 후 돌아가실 때까지 손자의 사고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차마 말씀 드리지 못하고 (차웅이가)군 복무 중이라고 둘러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며 조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맹골수도에 잠들어있던 세월호는 2년 전 인양돼 목포신항으로 옮겼다. 희생자 가족들은 지난해 9월 팽목분향소에 남아있던 희생자 사진과 유품을 안산으로 가져갔다.

세월호 참사로 중단된 진도항 2단계 개발 사업은 재개했고 팽목항 방파제와 팽목분향소 사이의 바다는 여객선 터미널 등 항만시설 공사를 위해 매립작업이 진행 중이다.

세월호가 떠난 자리, 참사의 흔적마저 서서히 지워지는 팽목항. 방파제에 새겨진 ‘기억의 벽’과 세월호 추모 조형물, 빨간 ‘기다림의 등대’, ‘하늘나라 우체통’이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시민들도 잊지 않았다.

(진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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