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동티모르 원두가 비싼 이유는 ‘노동의 가치’가 포함됐기 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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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환경 보호하는 ‘공정무역’

동티모르 커피는 일반 커피원두보다 다소 비싸지만 유전자조작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원종에 가까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
동티모르 커피는 일반 커피원두보다 다소 비싸지만 유전자조작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원종에 가까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
제자에게서 소포와 함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는 동티모르의 평화 재건과 커피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공정무역(fair trade) 사업을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아이는 중학교 때 저와 도시하천 탐사와 환경보전 캠페인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선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환경 관련 청소년단체 회장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다른 시민단체의 모금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유명 대학에 다녀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 텐데, 적은 임금을 받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슈타이너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는 아이들이다. 교사들은 자라나는 아이들 속에서 인간에 대한 외경심을 배우게 된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제자에게서 점점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편지와 함께 배달된 소포에는 커피가 들어 있었습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의 전쟁으로 전 국민의 3분의 1이 죽고 90% 이상의 건물이 파괴됐습니다. 이후 석유가 발견됐지만 자본과 기술 부족으로 경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설령 천연자원으로 갑자기 부자가 된다고 해도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네덜란드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연자원에 의존해 급성장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물가가 뛰고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져 제조업 경쟁력을 잃어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1959년 네덜란드가 북해유전을 발견한 후 경험한 사례가 경제용어로 굳어졌습니다. 동티모르는 아직 네덜란드병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비(非)에너지 부문이 에너지 부문에 비해 뒤떨어져 있지요.

동티모르의 주요 생계 수단은 커피 농사입니다. 80%가량이 커피 농사를 짓고 있어요. 거기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동티모르는 16세기부터 450년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습니다. 19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은 향신료, 사탕수수, 커피 같은 작물 무역에 열을 올렸지요. 토질이 척박한 동티모르에서는 커피 재배만 성공했어요. 그런데 포르투갈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1975년 11월 28일에 독립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0일 만에 인도네시아군이 침공해 다시 식민지가 됩니다. 이후 동티모르인의 노력과 인도네시아 독재정권의 몰락으로 드디어 2002년 5월 20일 21세기 첫 독립국이 됩니다.

독립 이후 커피 농사는 활기를 띠지만 다국적기업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사가는 바람에가 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러다 주변국들과 우리나라의 YMCA 등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방식을 공정무역이라고 합니다. 다국적기업인 스타벅스도 이 운동에 동참해 동티모르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한국 YMCA는 매년 약 50t 이상의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와 판매합니다. 제가 받은 커피가 바로 이것입니다.

동티모르 커피는 일반 커피원두보다 다소 비싸지만 유전자조작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원종에 가까운 맛을 간직하고 있어요. 이 커피는 저지대 대량 재배가 쉬운 로부스타종과는 달리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만 재배하는 아라비카종을 100% 사용합니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는 열매의 밀도가 단단한 고품질 원두입니다. 게다가 100% 수작업으로 커피를 생산해 노동의 진정한 가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분이라면 동티모르의 가난한 농민을 살리고 몸에 좋은 커피를 마시길 권합니다.

이런 문제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불과 4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경기 파주시 문산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에는 임진강 지천인 임월천이 있습니다. 인천하고 가까워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이어서 다양한 물고기가 있고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죠. 밀물과 썰물이 있어 밀물을 타고 올라온 돌고래도 가끔 잡혔어요.

실뱀장어 산란철이 되면 사람들은 임월교 아래서 불을 켠 채 실뱀장어를 잡으려고 북적였습니다. 이 실뱀장어를 잡아 양식장에서 7∼10개월간 키우면 민물장어가 됩니다. 양식장에서 새끼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으니 매번 실뱀장어를 잡아야 하는 거죠. 민물장어는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도 비쌌어요. 2016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번째로 민물장어 새끼를 생산하는 완전양식에 성공했지만 아직 대량생산은 어렵답니다.

당시 실뱀장어 한 마리는 50원에 팔렸죠. 새로 나온 부라보콘이 50원이었으니 굉장히 큰 돈이죠. 이렇게 귀한 장어를 누가 먹었을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다 일본으로 넘어갔더군요. 1975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20달러, 우리는 650달러로 약 8배 차이가 났습니다. 중간상이 50원에 사서 더 비싼 값으로 수출해도 일본에선 그렇게 비싼 값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때 실뱀장어 외에도 우리의 많은 자원이 저가에 수출됐습니다.

현재 우리도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공정무역은 이런 부당함을 시정하려는 노력입니다. 커피 이외에도 초콜릿, 설탕, 홍차, 면화 등에서 공정무역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물건을 사는 것으로 저개발국가 사람들을 돕고 무계획적인 자연 개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인권과 환경을 동시에 보호하는 셈이죠. 좀 더 비싸더라도 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윤리적 소비를 통해 성숙한 세계시민이 돼 보는 건 어떨까요.

이수종 신연중 교사·환경교육센터 이사
#인권-환경 보호하는 ‘공정무역’#노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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