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5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사거리. 강추위에 온몸을 꽁꽁 싸매고 삼삼오오 얘기를 주고받던 인부들은 오전 5시가 넘어서자 말수가 확연하게 줄더니 어느새 무표정하게 인사도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황영석씨(62)는 “여름엔 일 못 나간(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끼리 순댓국에 소주도 한잔하고 그런다”며 “하지만 오늘은 다들 돈이 없어서 누구 하나 먹으러 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 추워지면 일이 없으니 밥 먹으러 안 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남구로역 사거리에 모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 맞서 몸이라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추위는 쉽사리 털어지지 않았다. 겨우내 한파가 잦으면 어쩌나 걱정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이곳은 수도권 최대 건설 인력시장이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새벽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에 이르는 건설 노동자들이 이곳을 찾아 수도권 건설현장으로 나간다.
하루 새 10도 이상 떨어진 수은주에 인부들은 패딩, 마스크, 모자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특히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두건형 목도리를 착용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옷속에 스며드는 찬바람을 모두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이모씨는 “(건설)현장에 가면 여기보다 허허벌판이라 2~3도 기온이 더 떨어진다”며 “오늘부터 한파라니까 작년 생각이 나서 내복을 껴입고 빵모자도 2000원에 샀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전모씨 역시 “엄청 추워서 쫄쫄이(타이츠)를 껴입고 패딩도 입었다”며 “어제까지는 얇은 옷 껴입는 정도만 했는데 바람 때문에 얼굴이 따갑다. 현장에 나가면 이것보다 더 춥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전날(4일) 오후 11시를 기해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 대부분, 경북북부내륙과 전북북부내륙에 ‘한파주의보’를 발효했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8~6도, 낮 최고기온은 2~15도다. 전날과 비교해 아침 기온이 10~15도가량 대폭 떨어졌다.
추위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있어 단순한 날씨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건설현장은 겨울이 비수기다. 콘크리트는 기온이 낮으면 굳히기(양생)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겨울에 콘크리트를 ‘치면’ 강도가 약해 부실시공의 원인이 된다. 겨울이 짧아야 일을 더 할 수 있는 구조다.
김순모씨(57)는 “겨울엔 공구리(콘크리트) 굳는 시간이 길다. 여름에 2일이 걸리면 겨울엔 10일이 걸린다. 그래서 일거리가 확 준다”며 한숨을 쉬었다.
오전 5시20분은 당일 인력 모집이 끝나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가장 많다. 아직도 인도를 넘어 바깥쪽 차도까지 일을 구하지 못한 인부들이 바글거린다. 하지만 이내 하나둘씩 외투 속에 얼굴을 묻고 체념한듯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황영석씨는 “어제 일주일만에 일했는데 오늘은 또 못갔고, 갑자기 추워져서 일이 더 없어질 것 같다”며 “춥지만 않아도 한 달에 절반은 (일을)나가는데 이렇게 추우면 한달에 일주일도 못 나간다”고 토로했다.
남구로역에서 건설노동자들을 위해 20년째 차를 나눠주는 홍병순 자원봉사자에게도 겨울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는 “안쓰러우니까 이렇게 20년째 나와서 뜨거운 차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는 일이 확 줄어들어서 사람들이 더 힘들어한다”며 “(전체의)3할 정도만 (일을)나가고 나머지는 거의 일을 못 잡는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들어 일거리가 없는데 겨울이라 일이 확 줄어 대부분 그냥 허탕치고 간다. 그래서 올겨울에 더 힘들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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