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참사 31주년…유족들, 전두환 사저 진입하다 실신도

  • 뉴시스
  • 입력 2018년 11월 29일 14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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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오늘, 5살·8살 난 두 딸의 손을 잡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맞으러 김포공항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제 70살을 바라보고 있다. 살아생전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보지 못하면 어떻게 (저승에서) 남편의 얼굴을 보겠느냐.”(임옥순 KAL858기 가족회 부회장)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는 31년 전 참사를 기억하는 KAL858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와 슬픔이 담긴 흐느낌이 가득했다.

1987년 11월29일. 대한항공 858편 보잉707기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 해상에서 실종된 날이다.

이 사고로 승무원 20명과 승객 95명(한국인 93명·외국인 2명) 등 115명이 사라졌다. 유해나 유품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임 부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정부는 사고 이후 처음부터 기체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고 테러범 찾기에 총력을 기울였다”며 “실종자 가족을 총동원해 북한 규탄 궐기대회로 끌고 다니면서 당시 대통령 선거에 이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억울하고 비참한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난 31년 간 실종자 가족들은 이렇게 고통과 절망 속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다”면서 흐느꼈다.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는 이 사건을 북한의 테러로 보고 KAL858기에 탑승했다가 경유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린 김현희씨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가족 측은 김씨가 북한 공작원이라거나 KAL기가 폭파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사고 31주년을 맞아 실종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모인 KAL858기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본부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인간이냐, 짐승이냐. 독하고 잔인한 살인마 아니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이들은 “전두환정권이 사고 현지 수색도 안 하고 아무런 조사도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조작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았다”며 “전두환은 더 이상 침묵하지 마라. 김현희는 전두환과 국정원 등 뒤에 비겁하게 숨지마라. 미얀마 앞바다에 아직도 잠겨 있는 기체 잔해들은 당신이 저지른 살인범죄의 물증”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KAL858기 재수색, 재조사를 즉각 실시하라” “정부는 KAL858기 사고 진상을 밝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 사고 지역 재수색과 진상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성명서는 박은경씨가 읽었다. 박씨는 KAL858기 사고로 31년전 아버지를 잃었다.

박씨는 “사고 지역에서 기체 잔해가 발견됐다는 게 확인된 만큼 국토부는 잔해를 회수해 검증하고 전면적인 사고 재조사에 나서 달라”며 “우리 가족들은 오직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가족회와 진상규명대책본부는 이날 미얀마 해안지역에서 발견된 기체의 잔해도 공개했다. KAL858기의 잔해라는 주장이 제기된 물건이다. 잔해에 국화꽃을 바친 실종자 가족들은 잔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사회를 본 이종문 한국진보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은 “겨우 한 조각 돌아온 잔해”라며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가 하늘에 닿은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전두환의 목을 잡고 끌어내자”는 각오로 시작된 이날 추모제에서는 가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항의문을 전달하기 위해 사저 앞으로 진입하다가 경찰에 막혀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이 진입로를 막자 가족들은 “비켜라” “나오라”고 고성을 질렀고,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 한 명이 쓰러져 119 구급차가 출동했다.

가족 대표자 소수가 경찰과 조율 후 전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진입했지만 문틈으로 항의문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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