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日 욱일기 논란과 마이클 샌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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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관함식과 욱일기(욱일승천기)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10일부터 14일까지 제주도에서 세계해군축제라는 이름으로 국제관함식이 열립니다. 관함식은 국가원수가 직접 자국 함정의 사열을 받는 의식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0년마다 열립니다. 전 세계에서 약 4만 명의 장병과 함께 군함 50여 척, 항공기 20여 대가 참여한다고 합니다. 제주도 시민단체들은 한반도 평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고 관함식 자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국내 갈등과 더불어 국가 간 갈등도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전범기인 욱일기 때문입니다. 우리 해군은 국제적 관례에 따라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국가의 군함에 자국 국기와 태극기만 게양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욱일기 게양을 고집했습니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입니다. 일본의 과거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르는 등 국내 여론은 뜨거웠습니다.

논란 끝에 일본의 불참 통보로 사태가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뒤끝은 개운치 않습니다. 군국주의의 악령을 떨치지 못하고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 때문입니다.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버리고 과거 만행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는 독일과 명확히 대비됩니다.

1951년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총리는 “독일 국민의 절대 다수는 유대인을 상대로 한 범죄를 혐오했으며 그 범죄에 동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범죄가 독일 국민의 이름으로 저질러졌기에 그에 관한 도덕적·물질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생존자와 이스라엘에 배상금 수백억 달러를 지급했으며 빌리 브란트, 앙겔라 메르켈 등 수많은 독일 정치 지도자가 수십 년에 걸쳐 공개적으로 과거 세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과거 세대의 잘못에 대해 현재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자유주의적 정의관을 가진 미국의 로버트 노직(1938∼2002)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자신을 강제하는 도덕적 의무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과거 세대의 잘못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사진)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에는 구속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공동체를 위해 도덕적·정치적 의무를 다하고 나아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아는 그의 사회적·역사적 역할과 지위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과거 세대가 행한 잘못을 현재 세대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샌델은 개인의 정체성은 그가 속한 공동체와의 연고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형성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일본은 한편으로는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집단주의적 모습을 보이면서 과거 세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리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현재 세대들끼리는 필요에 따라 집단주의적 연대감을 보이고 과거 세대와는 편의에 따라 단절하는 모순적 태도는 국제 사회의 평화적 공존에 장애가 될 뿐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일본 욱일기 논란#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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