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일자리 창출-사회통합 기반 선도하는 ‘장애인 표준사업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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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톤시스템 생산팀 단체.
㈜레드스톤시스템 생산팀 단체.
많은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불편한 근무환경, 적은 급여, 불공평한 기회 등의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한다. 장애인 일자리 확충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지금,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취업에 어려움 겪는 장애인… 10명 중 6명은 무직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펴낸 ‘2017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5월 기준 국내 만 15세 이상 등록 장애인 246만 명 중 취업자는 90만 명으로 고용률은 36.5%에 불과하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15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61.3%)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장애인 10명 중 6명 이상이 무직이라는 뜻이다.

장애인 고용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보통 업체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 해당 인력의 경력과 전공 등을 보고 업무 적합도를 판단하지만 장애인의 경우 능력과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닌 장애로 판단된다. 또한 단순 작업 외에도 다양한 일자리에 채용될 기회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현장에선 장애인도 좋은 인력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 ㈜오상엠엔이티 유삼주 대표(전국장애인표준사업장연합회 회장)는 2013년 우연한 계기로 한 구직 장애인의 채용 면접을 볼 때를 회상했다. 면접 당시 왜 일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장애인은 “돈을 벌어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고 싶습니다”고 답했다. 유 대표는 사회적 약자로만 여겼던 장애인의 적극적인 의지에 감명을 받았고, 이후 장애인 근로자 채용을 늘려 2013년 12월 ‘장애인표준사업장’인증을 받았다.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에 이목 쏠려
그러나 현실은 장애인 인력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현재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공기업, 준정부기관, 지방공기업 등)은 3.2%,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인 민간기업은 소속 근로자 총수의 2.9%를 장애인으로 의무 채용해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민간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 이행률은 45%에 그쳤는데, 1000명 이상 기업은 23.9%로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이행률이 떨어졌다. 또한 장애인 고용에 모범을 보여야 할 국가·지자체(의무 3.2%, 이행 2.88%) 및 공공기관(의무 3.2%, 이행 3.02%)조차 의무고용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 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시급하다. 엘리베이터·점자블록·장애인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춘 직장을 찾기 쉽지 않고, 채용되더라도 업무분야가 단순노무(조립, 포장, 서비스 등)에 일자리가 국한돼 있다. 또한 낮은 급여와 편견, 기회의 불균형(승진, 교육 등) 등으로 많은 장애인이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와 같은 불균형 속에 장애인을 다수 고용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장이 바로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취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이 편리하게 일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장애인 다수고용 사업장’으로, 장애인 근로자를 위한 일정 요건을 충족해 정부(한국장애인고용공단)로부터 인증을 받은 사업장을 말한다. 2002년 3개의 사업장으로 시작한 장애인표준사업장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2018년 8월 기준) 전국 312개 사업장에서 7339명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엘리베이터·전용주차구역·장애인화장실·점자블록 등의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어 장애인 근로자들이 편리하게 일할 수 있고,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며 장애인이 경제적인 자립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이다.

㈜레드스톤시스템 안경호 근로자 작업모습.
㈜레드스톤시스템 안경호 근로자 작업모습.
“장애인이 성장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무용 컴퓨터를 납품하며 연매출 380억 원 규모로 성장한 ㈜레드스톤시스템은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레드스톤시스템과 장애인근로자의 인연은 2007년 우연한 기회로 청각장애인 한 명을 채용하면서 시작됐다.

레드스톤시스템 박치영 대표는 “청각장애인이라 의사소통은 물론 컴퓨터 조립 및 운반 업무에 비장애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그리고 조직생활에 문제없이 융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업무 집중력과 의지는 회사 내 어느 직원보다 뛰어났다. 일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이 청각장애인 직원을 통해 박 대표는 장애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지우는 것은 물론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됐다. 이에 매년 장애인 근로자 채용을 늘려갔고, 2013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장애인 표준사업장 인증’을 받았다. 현재 110명의 근로자 중 37명의 장애인이 조립, 물류관리, 운송 등 다양한 직무에 근무 중이다.

장애인 근로자 업무 능력 증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레드스톤시스템은 장애인 직원 채용 후 장애 유형 및 성향 등을 고려하여 업무 배치를 한다. 또한 3∼6개월간 집중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업무 능력을 높이고,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장애인직원에게는 최저임금을 넘어 비장애 직원과 동등한 수준의 급여와 공정한 승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4년 입사해 2016년 대리로 진급한 안경호 씨(지체장애 3급)는 생산된 컴퓨터의 수량을 파악하고 전국으로 배송하기 위한 물류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하루하루 고민 속에 살았지만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 이제는 생존이 아닌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안에 과장으로 진급하는 것이 목표다.

㈜커피지아 초콩사 핸드픽 작업 모습.
㈜커피지아 초콩사 핸드픽 작업 모습.
“발달장애인의 장애, ‘남다른 재능’이 될 수 있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커피지아는 로스팅 커피를 생산하는 업체로 2014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커피지아의 모토는 ‘커피는 맛있어야 한다’이다. 이를 위해 불량 원두를 골라내는 ‘핸드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커피지아에서는 이 중요업무를 발달장애인이 담당하고 있다.

지적장애·자폐성장애인을 일컫는 ‘발달장애인’은 인지나 의사소통 등의 문제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중에서도 약자에 속한다. ‘2017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지적장애인의 고용률은 22.9%, 자폐성장애는 22.0%로 15세 이상 전체 장애인 고용률 36.5%에 비해 크게 낮았다.

그러나 커피지아에는 전체 장애인근로자의 100%인 12명이 발달장애인이다. 비장애인 2명에게 이 업무를 맡겼을 때는 금세 지루해하고 퇴사도 잦았다고 한다. 따라서 성실하며 집중력이 뛰어난 직원이 필요했고, 2011년 자폐성 장애인을 채용해 일을 맡겼는데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반복적이고 동일한 패턴의 행동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인의 성향과 핸드픽 작업의 궁합이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새로운 직무’를 발견하게 된 것으로, 그들의 장애가 한 장애인표준사업장에서는 ‘남다른 능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장애인 복지는 일자리 창출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 인증을 받으면 정부의 다양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초 3년간 법인세와 소득세가 100%, 그 후 2년간 50%가 감면된다. 또한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운영하고 있거나 이를 준비 중인 사업장은 작업시설·부대시설·편의시설 등의 비용을 신규 장애인 채용 수에 비례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특히 2013년부터 실시된 ‘공공기관의 장애인표준사업장 생산품 우선구매 제도’를 통해 공공기관(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이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사세 확장은 물론 장애인 고용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창출부 현정훈 부장은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는 경쟁노동시장에서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을 다수 고용하는 장애 친화적 사업장 육성과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며 “공단은 기존 40개소였던 설립 지원을 2019년 60개소로, 이후 80개소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대기업의 적극적인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통한 양질의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이들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장애인 표준사업장. 더 높은 국민적인 관심과 보다 많은 정부의 지원을 기대한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장애인의 꿈#장애인 표준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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