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주니어를 위한 칼럼 따라잡기]미군 떠난 용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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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임성훈
일러스트레이션 임성훈
국방부 취재를 담당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 한 육군 장성을 따라 서울의 용산 미군기지로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다. 빨간 별판을 단 승용차를 타고 별다른 제지 없이 곧장 들어선 용산기지는 시끄럽고 북적대는 서울 도심 속에 숨어 있던 별천지, 고즈넉한 휴양지처럼 느껴졌다. 벌써 20년 전 일인지라 그곳 풍경은 아련하기만 하지만, 미군 레스토랑에서 호탕하게 스테이크를 주문하던 그 장성의 자못 우쭐해하던 표정은 여전히 기억에 또렷하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최근 용산을 떠나 경기 평택기지로 옮겼다.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 지 73년, 주한미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61년 만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들어온 미 24군단 예하 제7사단 병력은 이전까지 일제의 총독관저와 사단사령부, 사단장관저 등 병영시설이 있던 용산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를 내걸었다. 이후 세계 유일의 도심 속 군사기지 용산은 사실상 한국 안의 미국으로서 ‘용산합중국’ ‘용산공화국’으로 불렸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 역사는 약 7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한반도를 침략한 몽골군은 한강과 가까운 용산을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과 명군이,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구한말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끌려왔던 곳이 바로 용산기지 맨 위쪽에 있던 청군 지휘소였다. 이후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용산은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가 됐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자 아픔의 땅이었던 것이다.

광복 후에도 오랜 기간 수도 한복판을 미군에게 내준 이유는 북한의 위협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옮겨가면서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뜻하는 ‘인계철선’ 기능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하지만 전후방이 따로 없는 현대전에서 인계철선 개념은 의미가 없고, 더 크고 좋은 새 둥지로 옮겨간 주한미군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군이 떠난 용산, 과거 행세깨나 하던 이들이나 들어갈 수 있던 그곳은 이제 모두에게 열린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다.

동아일보 6월 30일자 이철희 논설위원 칼럼 정리

사설을 읽고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1. 다음 중 본문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미 24군단 예하 제7사단 병력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②용산기지는 세계 유일의 도심 속 군사기지였다.
                  
③용산은 앞으로 제2 미군기지로 쓰인다.
                  
④임진왜란 때는 왜군과 명군이,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했다.
                  
2. 다음 중 본문에서 용산 미군기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별천지 ②휴양지
                  
③용산합중국 ④수도
                  
김보민 동아이지에듀 기자 gomin@donga.com
#용산#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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