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조용휘]꽁꽁 얼어붙은 ‘사랑의 온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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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부산 금정구 도심 속 오지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 비닐하우스. 연이은 사업 부도와 이혼, 유일한 피붙이였던 딸마저 떠나버려 홀몸이 된 김모 할아버지(76)의 보금자리다. 수도가 없어 근처 시냇물을 생활용수로 쓴다. 한겨울이면 시냇물이 얼어 물통에 물을 미리 받아 놓고 봄철까지 사용한다. 김 할아버지는 최근 혹한이 몰아치자 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갈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10만 원 모으기가 쉽지 않는 마당에 보증금 400만 원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웃돕기의 상징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가 기부 한파 탓에 꽁꽁 얼어붙었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을 시작한 지난해 11월 20일 이후 24일 현재까지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85.1도를 기록했다. 31일까지 이어지는 캠페인의 모금 목표액은 125억6600만 원. 이 가운데 1%에 해당하는 1억2566만 원이 모이면 온도 눈금이 1도씩 올라간다.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은 112억7500만 원. 올해는 지난해의 94% 수준인 106억9500만 원이 모였다. 기부 건수 역시 3만1726건에서 2만9851건으로 줄었다. 새해 들어서는 올라가는 온도 속도도 느리다. 캠페인 기간이 이레밖에 남지 않아 사랑의 온도가 100도까지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온도가 100도에 미치지 못한다면 1998년 온도탑이 세워진 이후 첫 사례가 된다. 지난해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연간 모금액도 202억8000만 원으로 동기 대비 98.4%, 목표 대비 96%에 그쳐 처음으로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부산에서 기부가 위축된 직접적인 원인은 조선과 해운업이 침체하면서 법인 기부가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 농단과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등이 겹쳐 기부문화에 관한 불신이 깊어진 것도 개인 모금 감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거 부산에서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랑의 온도가 100도에 도달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가슴을 적시는 이야기가 잇따라 알려져 시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고 있다. 최근 남구 대연동의 이모 군(8)은 어머니 손을 잡고 모금회를 찾아 “혼자 사는 할아버지를 위해 써 달라”며 돼지저금통을 내놓았다. 해운대 H초등학교 학생들은 “난치병 친구를 돕고 싶다”며 돈을 모아 모금회에 기부했다. 젊은 시절 혼자 돼 사하구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최모 씨(53·여)는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월 3만 원 기부를 약속했다. 자영업을 하는 연제구 송모 씨(56)는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전달해 달라”며 100만 원을 놓고 갔다. 사상구에서는 60대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평소 도움을 준 집주인 노부부에게 전달해 달라”며 유서와 함께 수백만 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세상이 어려우면 도움이 필요한 절대 빈곤층은 훨씬 더 춥게 마련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내가 나서고, 우리가 행동한다면 맹위를 떨치는 한파도 충분히 녹일 수 있다. 콩 한 쪽도 나누는 따뜻한 마음에 어려운 이웃들은 큰 용기를 얻는다.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이웃돕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온도#기부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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