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비트코인 광풍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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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와 화훼 산업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국화는 튤립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터키산 튤립이 수입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재기 현상으로 가격이 폭등하여 튤립 구근(알뿌리) 하나가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려는 사람은 없고 팔려는 사람만 넘쳐 거품이 꺼지게 됩니다. 이 ‘튤립 파동’은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거품 경제)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가즈아’라는 신조어가 유행입니다. ‘가자’라는 말을 길게 늘어뜨려 강조한 말입니다.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비트코인은 대표적인 가상 화폐(암호 화폐)입니다. 정부의 통제 안에서 유통되는 금속 화폐나 종이 화폐와 달리 인터넷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가상 화폐는 중앙 통제 없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개인 간에 자유롭게 유통되는 화폐입니다. 비트코인 외에도 이더리움, 리플, 에이다, 라이트코인 등 가상 화폐 종류는 무척 많습니다. ‘가즈아’라는 말에는 가격 폭등을 기대하며 무조건 투자를 권유하는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튤립과 가상 화폐는 상품 자체가 다르지만 가격 변동 폭이 크고 투기적 수요가 있으며 거품이 꺼질 경우 경제적 타격이 크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우리나라 가상 화폐 시장은 너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국내 거래 비트코인은 전 세계 시장의 20%, 리플은 50%에 달할 정도로 가상 화폐 열풍이 거셉니다. 이미 300만 명 이상이 투자했고 그중 대다수가 20, 30대 젊은층이라고 합니다. 가상 화폐 가격은 급등락을 거듭했습니다. 가파르게 상승할 때는 투자자 게시판에 장밋빛 전망과 함께 수익을 인증하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급락 장세에서는 스스로 부순 모니터 사진을 올리는 등 분노 인증으로 돌변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생의 승부를 걸 듯 투자하는 가상 화폐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합니다.

가상 화폐는 화폐라기보다는 가상 투자 자산입니다. 가상 화폐를 공식 인정하고 과세하는 나라도 있고 규제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실명제를 통해 부분 규제하고 있습니다. 가상 화폐는 블록체인 기술과 연관되어 있어 전면 규제에 대한 저항이 큽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중앙 서버 대신 거래 단위, 즉 노드별로 저장하는 분산 저장 방식입니다. 이렇게 저장된 데이터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거래 당사자가 체인처럼 연결되어 공유합니다.

블록체인의 핵심 기능은 이력관리입니다. 물류 유통, 의료 정보 시스템, 지식재산권 보호 등의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이며 미래의 성장동력 중 하나입니다.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가상 화폐의 투기적 요소를 제어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하게 가상 화폐 열풍이 분 것은 소위 흙수저 담론과 관련됩니다. 노력을 해도 금수저가 되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붕괴되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됐습니다. 가상 화폐 신드롬은 계층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현상입니다. 가상 화폐가 신세계일지 신기루일지 지켜볼 일이지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국어대부설고 교사
#비트코인#튤립 파동#거품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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