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폭행사건 가해자가 벌을 안받는 경우도 있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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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사불벌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청사. 동아일보DB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청사. 동아일보DB
형사 법정에 의뢰인과 함께 앉아 사건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 사건이 막 시작되고 있었는데, 죄명은 폭행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제 담당 사건 기록을 좀 더 살피거나 의뢰인과 잠시 나가 이야기할 때가 많지만 최근 일어난 폭행 사건이 떠올라 그대로 방청했습니다.

택시요금을 둘러싸고 생긴 시비가 단초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도 좀 취해 있었기 때문에 자제하지 못한 면이 있었지만 택시기사가 너무 불친절했고, 특히 자기 아내를 홱 잡아채 나동그라지게 해 화가 나 한 대 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폭행으로 이어진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으니 봐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법정에는 꽤 덩치가 크고, 불친절해 보이는 택시기사가 앉아 있다가 재판부의 호명을 받고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택시기사는 피고인의 주장과 다른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피고인이 술에 취해 어떤 여자랑 함께 택시를 탔는데, 운전하고 가는 내내 욕설을 해대서 자신도 기분이 상했고, 막판에 택시요금을 바닥에 던지자 도저히 그걸 주울 수는 없어서 동행한 여자에게 팔을 뻗어 요금을 달라고 한 게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재판장은 증언이 마무리될 즈음에 피해자인 택시기사에게 피고인을 꼭 처벌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택시기사는 괄괄한 말투로 사건 당시에는 하도 화가 나고 황당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 승객이 술에 취했고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싶다면서 다소 누그러졌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때린 것은 잘못한 일이고,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오늘 이렇게 법정에 나오느라 일도 못 했을 텐데 맨입으로 용서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아마 이 사건은 피해자와 합의가 성사되면 피해자가 처벌불원(處罰不願·처벌을 원하지 않는다)의 의사를 밝힐 것이어서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검찰에서 공소를 제기하기 전에 수사단계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면 기소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 경우에는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하게 됩니다(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제3항 제4호). 그랬다면 피고인도 형사재판을 받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겠지요.

이같이 일정한 범죄는 검사가 기소(起訴·검사가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는 일)를 하고 싶어도, 법원이 재판을 통해 처벌하고 싶어도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드시 피해자 기타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범죄가 성립하는 친고죄(親告罪), 일단 수사를 하고 기소도 할 수 있지만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가 확인되면 이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폭행죄나 협박죄, 명예훼손죄 등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국가가 나서서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단순히 사람을 때리는 폭행과 달리 상처까지 입혀 상해죄를 저질렀다면 피해자가 용서하고,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를 밝혀도 국가는 피해자의 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형량에 참작만 할 뿐이지요. 이처럼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를 규정한 이유는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면서 그 절대성이나 권위만 내세울 경우 형식적 획일성이나 형평에 어긋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고 구체적인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제 담당 사건도 아닌, 우연히 방청한 폭행사건에서 재판부가 재판 도중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확인하는 장면이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최근 불거진 한 폭행 사건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만취해 함께 자리했던 사람들에게 막말을 합니다. 막말은 폭언이 되고, 운동선수 출신의 꽤 덩치가 큰 그 남자는 결국 동석한 사람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폭행까지 가했습니다. 폭언과 폭행을 가한 그 남자는 국내 굴지의 기업, 재벌가의 자제였고, 술자리에 동석했다가 그로부터 폭언을 듣고,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힌 사람들은 국내 최고 로펌의 변호사들이었습니다. 법률 전문가들이 피해자인데 오죽 잘 해결할까 싶지만 해당 사건은 두 달 가까이 묵혀 있다가 사건 보도를 통해 사회에 알려진 후에야 후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이미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은 바 있었고, 집행유예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주점폭행’에 이어 ‘로펌폭행’이라는 자극적인 별칭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재벌가의 갑질, 유전무죄와 같은 오래된 명제는 신물이 난 탓일까요? 이 일을 굳이 문제 삼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힌 피해자들에게 비겁하다는 날 선 비난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폭행죄가 반의사불벌죄인 터라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국가가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남자가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법망을 피해 빠져나가게 방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를 자칫 가해자로 바꿔버리는 위험한 발상이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폭행의 피해자들이 범죄자를 용서할지 말지는 오로지 그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판단하면 됩니다. 반드시 범죄자를 엄벌해 달라고 할 의무는 없는 것이지요.

그들은 그날 그 자리에서 이미 듣지 못할 말을 들어 불쾌했을 것이고, 겪지 않았어야 할 폭행을 당해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갑질하는 재벌가 자제에게 시원한 한 방을 먹이는 멋진 장면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실망스럽겠죠.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반의사불벌죄#폭행사건 가해자#로펌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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