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통상임금 합의’ 무시하고 “확대지급” 지시한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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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병원-상계백병원 노사, 정기상여금 단계적 포함 합의
서울노동청, 시정지시로 뒤집어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해 이룬 합의를 정부가 무시하고 통상임금을 더 확대해 지급하라는 시정 지시를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노사가 합리적으로 해결한 사안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과잉 처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한양대병원과 상계백병원에 각각 체불 임금 21억 원과 19억 원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라는 시정 지시를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양 병원이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반영하지 않았으니 이를 모두 반영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양 병원 노사는 정기상여금의 일부를 단계적으로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로 2014년 합의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 주도 아래 노조는 통상임금 확대를 양보하는 대신에 병원 측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 △간호사 추가 고용 등을 약속하면서 ‘상생 방안’을 찾은 것이다. 특히 한양대병원 노사는 정기상여금을 2019년까지 통상임금에 추가 반영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정부가 체불 임금 지급 결정을 내렸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약을 맺고,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는 등 민노총 내부에서 대화를 중시하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노사 간 상생을 추구하는 일종의 모범 사례인 셈이다.

그러나 서울노동청은 9월 장시간 근로에 대한 근로감독에 나섰고, 의료업계에서 두 병원을 선정해 조사에 착수했다. 서울노동청은 두 병원이 연장, 휴일근로수당을 산정할 때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정기적, 고정적, 일률적 임금은 통상임금으로 규정)를 위반했다며 시정 지시를 내렸다.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의 존립을 흔들 정도로 파장이 크고 또 대법원 판례만 있을 뿐 관련법에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 병원 노사가 이런 사안을 한 발씩 양보해 상생 모델을 구축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행정 지시를 내린 건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양 병원 노조조차 “정부가 노사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해 합의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근로자에게 유리한 조치를 내렸는데도 이에 대해 노조가 비판하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노동청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는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법을 지키지 않은 노사합의는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며 “불법적 사항을 발견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시정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노사#통상임금#확대지급#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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