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 트럭에 7.8t 화물 과적… 기름통 196개 ‘시한폭탄’이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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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터널 앞 차량폭발 참사

뼈대만 남은 화물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3일 경남 창원시 창원터널 주변에서 뼈대만 남은 5t 
화물차를 감식하고 있다. 경찰은 2일 발생한 화물차 폭발 사고의 원인을 졸음운전이나 과적에 따른 차량 이상 등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창원=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뼈대만 남은 화물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3일 경남 창원시 창원터널 주변에서 뼈대만 남은 5t 화물차를 감식하고 있다. 경찰은 2일 발생한 화물차 폭발 사고의 원인을 졸음운전이나 과적에 따른 차량 이상 등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창원=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5t 화물차에 실린 화물은 7.8t이었다. 최대 적재량(5.5t)보다 2.3t이나 많았다. 제작된 지 17년 된 낡은 화물차는 8.0t에 가까운 인화물질을 실은 뒤 내리막길을 질주했다. ‘움직이는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2일 경남 창원시 창원터널 앞 도로에서 대형 폭발사고를 낸 화물차에는 당초 알려진 것보다 100개 이상 많은 기름통이 실려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경남지방경찰청과 창원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고 차량에는 4종류의 윤활유 200L 22통과 20L 174통 등 총 196통이 실려 있었다. 운전자 윤모 씨(76)는 사고 당일 오전 업체 2곳에서 기름통을 실었다. 사고 당시 총 화물량은 7880L였다.

경찰은 윤 씨가 최근 2년간 10건의 사고를 내는 등 11년간 여러 건의 교통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윤 씨의 사고 이력과 내용을 확인 중이다. 윤 씨는 너무 사고가 잦아 물류업체가 퇴직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반복되는 사고에도 대책은 유명무실

경찰은 과적을 주요 사고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창원터널 앞 도로는 경사 5도 정도의 내리막길이다. 폐쇄회로(CC)TV에 찍힌 화물차는 좀처럼 속도가 줄지 않았다. 무게로 인한 가속을 이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판박이 같은 화물차 참사가 끊이지 않는다. 원인도 비슷하다. 대부분 과적 과속 졸음운전 등이다. 정부가 매번 대책을 내놓지만 현장 상황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화물운송업계의 구조적 문제 탓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현행 지입차주(개인이 차량을 구입한 뒤 운송회사 소속으로 영업하는 것) 방식에서는 운전자 정밀 관리가 불가능하다. 화물 적재에 대한 규정도 부실하다. 위험 차량을 모는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이 상태라면 운전자 누구에게나 도로가 불바다로 변하는 사고가 닥칠 수 있다.

현재 국내 화물 운송의 상당수는 지입차주가 맡고 있다. 지입차주는 개인사업자나 다름없다. 일한 만큼 돈을 받아 간다. 당연히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규정대로 화물을 싣고 가면 기한을 맞추라는 화주의 요구에 맞출 수 없다. 운송회사가 운전자를 제대로 관리할 리가 만무하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4시간을 운전하면 30분은 반드시 쉬도록 하는 의무휴식제가 도입됐지만 지입차주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최근 물류 운송을 알선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콜떼기’로 불린다. 화주와 운송업체가 이용하지만 개인도 간단한 개인정보와 차량번호만 등록하면 앱을 통해 운송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정부는 전국 지입차량의 운행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 구멍 뚫린 규정, 개선도 미적미적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졸음운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씨의 화물차는 터널 안에서 좌우로 비틀거렸다. 실제 무리한 운전이 졸음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자 110명을 대상으로 수면진단과 설문조사 등을 실시한 결과 전체 5분의 1 이상이 수면장애(수면무호흡증)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가 있는 정상 운전자에 비해 졸음운전 경험이 2.4배나 많았다.

고령 운전자 증가도 문제다. 화물차의 경우 고령 운전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해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갱신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1년이 지나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위험물을 다루는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고령 운전자 대책은 빠져 있다. 윤 씨는 1998년 대형면허를 취득한 뒤 줄곧 화물운수업에 종사해 왔다. 경찰은 윤 씨 가족과 업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당일 행적 및 지병 이력을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화물차 운전자 중에는 위험물질 운반 시 등록의무(6t 초과 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동식 저장탱크(탱크로리) 방식의 화물차는 처음 소방청 산하 소방안전협회에서 16시간 교육(이후 3년마다 8시간)만 받으면 운송자격이 생긴다.

창원의 한 윤활유 대리점 관계자는 “2t가량의 과적은 운수업계에서는 일종의 관행이다. 하지만 윤 씨처럼 고령 운전자는 본 적이 없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창원=강정훈 manman@donga.com·김동혁 / 정성택 기자
#창원터널#차량폭발#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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