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싸우는 횡단보도 휠체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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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자, 휠체어 타고 건너보니

동아일보 김윤종 기자가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조심스레 휠체어를 움직이는 모습. 줄자로 재 본 ‘연석’(보도와
 차도의 경계석) 높이는 22cm인 반면 인도의 폭은 좁아 경사로 기울기(7.4도)가 가파른 편이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동아일보 김윤종 기자가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조심스레 휠체어를 움직이는 모습. 줄자로 재 본 ‘연석’(보도와 차도의 경계석) 높이는 22cm인 반면 인도의 폭은 좁아 경사로 기울기(7.4도)가 가파른 편이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건 짜릿한 쾌감이 아닌, ‘죽음’의 공포를 안고 가는 ‘전쟁’ 같았다는 것.

서울 시내 곳곳의 횡단보도를 휠체어를 타고 건너 본 기자의 소감이다. 4월 전북 전주시 도로변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도로와 인도 사이 턱을 낮춘 경사로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지나가던 차에 치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횡단보도 건너기가 너무 두렵다”는 장애인, 장애인단체의 항의가 이어졌다.

기자는 지난달 초 서울 종로구 안국동 일대에서 3시간가량 직접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장애인 눈높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봤다. 장애인이 주로 사용하는 50만 원 내외의 보급형 휠체어를 준비한 뒤 한국장애인개발원 안성준 팀장의 도움을 받으며 인도를 지나 횡단보도들을 건너봤다.

안국역 사거리의 첫 횡단보도. 보행 신호등(초록색)이 켜졌다. 횡단보도와 접속하는 보도와 차도 경계구간의 턱 낮추기 부분에는 경사로가 설치됐다. 경사로를 무심코 내려가려 하자 휠체어가 조금 과장해 놀이공원 청룡열차처럼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재빨리 두 팔로 휠체어 바퀴 부분을 강하게 잡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자칫 바뀐 보행신호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던 회색 승용차와 부딪혀 사고가 날 뻔했다.

온전히 팔 힘으로 20m가량의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만만치 않았다. 횡단보도와 연결된 인도 경사로를 오르려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미는 순간 휠체어가 뒤로 넘어갔다. 경사로가 가팔라 휠체어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렸기 때문. 휠체어를 탄 채 뒤로 넘어가 도로 위로 넘어졌을 때 자동차가 지나간다면? 안 팀장은 “횡단보도 부근의 사고 발생 건수는 2014년 1978건, 2015년 2123건 등 증가하는 중”이라며 “특히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이날 휠체어를 타고 건너 본 안국동 일대 횡단보도 12곳 중 9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인사동 문화거리에서 조계사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 인도의 경사로 기울기는 무려 12.2도나 됐다. 휠체어로 오르기 안전한 기울기는 4도 이하다. 인도 앞쪽 경사로와 옆쪽 경사로의 기울기가 서로 달라 휠체어의 한쪽 바퀴가 뜨기도 했다. 온 힘을 다해 팔로 휠체어 바퀴를 밀어 올려도 마치 자동차가 진흙에 빠진 듯 헛도는 경우도 허다했다.

개발원에 따르면 근본적인 문제는 관련 규정이 상충되는 탓이다. 인도 폭이 넓을수록 적절한 경사로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도로의 구조 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인도 폭을 2m 이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불가피하면 인도 폭을 1.2∼1.5m 이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이에 시내 곳곳에 폭이 2m가 안 되는 보도가 허다한 반면 대부분의 연석(보도와 차도의 경계석) 높이가 20∼25cm인 탓에 급경사 경사로가 만들어진다는 게 개발원의 분석이다.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51만 명. 이 중 휠체어 등 보행보조기구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20%에 달한다. 선진국처럼 보행자 중심의 교통체계를 이루려면 장애인 고령자 등 교통약자의 사고 위험을 줄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개발원 김인순 부장은 “연석의 높이를 16cm로 설치하면 보도 폭이 2m여도 휠체어로 오르기에 무난한 각도가 나온다”며 “횡단보도 일대만이라도 연석의 높이를 15cm 내외로 조정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휠체어#횡단보도#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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