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택 “자소서, 문장력보다 ‘소재’가 중요… 모의고사 지문 인용, 깊은 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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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학종전문가’ 경희대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 인터뷰

입학사정관 경력 10년인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네오르네상스관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학생부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 아니라 지역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입학사정관 경력 10년인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네오르네상스관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학생부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 아니라 지역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수능 개편이 1년 유예된 데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이 큰 영향을 미쳤다. 수능이 절대평가화되면 학종 비중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학부모들은 도무지 학종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경희대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학종 전문가’다. 입학사정관 경력만 10년이다. 그동안 그가 평가한 학생만 5000여 명에 이른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학술지에 학종 관련 논문을 6건 게재했다. 그에게 ‘학종의 미래’를 물었다.

―자기소개서(자소서)가 ‘자소설’로 불린다.

“자소설은 자소서 내용을 어떻게 포장할지 고민하면서 나온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대필(代筆)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들은 문체나 문장력을 보는 게 아니라 ‘소재’를 본다. 소재는 학교활동 속에서 형성된 자신만의 특기나 장점을 말한다.”

임 입학사정관에게 인상 깊었던 자소서를 꼽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모의고사 지문 내용을 자소서에 인용한 사례를 언급했다. “해당 지문이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내용을 인용하면서 자기가 지원한 분야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썼다. 이렇게 모의고사를 보다가도 인상적인 문장을 발견하면 써놓는 학생이 있다. 이런 건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기 어려운 내용이다.”

―자소서나 비교과활동, 면접 등이 모두 정성평가다. 진짜 공정한가.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2, 3명의 입학사정관이 함께 평가한다. ‘집단지성’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한 자소서를 두고 입학사정관 사이의 점수 차이가 크면 재평가를 해 점수를 조정한다. 면접도 인성면접과 적성면접 두 단계로 나눠 시행한다. 입학선발위원회에서 선발 절차나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도 거친다. 예전에 고교 교사 100여 명과 함께 학생들의 자소서 등을 두고 모의평가를 해봤더니 80∼90명이 낸 점수가 서로 비슷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종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

“분명한 오해다. 합격 결과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흔히 부자 동네에선 수능으로 진학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다. 서울 강남구는 93%, 대구 수성구는 72%가 수능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동네에선 학종 합격률이 훨씬 높다. 서울 강북구는 79%가 학종으로, 21%가 수능으로 합격했다.”

―내신까지 절대평가로 바뀌면 학종은 무력화되는 것 아닌가.

“대학들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현재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에서는 내신 5, 6등급에 해당하는 학생들까지 평균 90점 이상을 받고 있다. 내신에서 전 과목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고교 학생들의 학종 합격률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임 입학사정관은 절대평가를 적용해야 하는 과목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진로선택과목은 학생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만큼 학생의 적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만약 진로선택과목을 상대평가한다면 인원이 적은 과목은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진로선택과목은 절대평가,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은 9등급 상대평가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가장 뽑고 싶은 ‘좋은 인재’는 어떤 학생인가.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졸업 후에 대학을 빛내줄 학생이다. 지적 호기심과 자기 주도적 학습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원 학과에 대한 관심과 적성도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곳인 만큼 협업 능력도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해본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된 학생이 좋은 인재다.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정작 학교에서 잠만 잔다면 좋은 학생일 수 없지 않은가.”

―많은 논란 속에서도 학종은 왜 필요한가.

“지금은 다(多)기능, 다가치 사회다. 획일화된 수능 점수로 줄을 세워서는 새로운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할 수 없다.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학생을 다양하게 확보해야 한다. 다양한 소득 환경, 다양한 지역, 다양한 고교의 학생이 고르게 우리 대학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게 학종이 필요한 이유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자소서#학종#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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