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정재락]말만 무성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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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생태제방 축조, 댐 수위 조절, 가변형 물막이(카이네틱)댐 설치, 유로(流路) 변경, 타 지역 댐의 물 공급….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지금까지 나온 방안들이다. 암각화가 발견되기 6년 전인 1965년 하류에 지은 사연댐의 영향으로 1년에 8개월 이상 물에 잠겨 훼손이 심해지자 갖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그러나 아직 어느 것 하나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또 다른 암각화 보존 방안을 제시했다. 송 전 위원장은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아 침수를 막자는 울산시의 생태제방안을 두고 “문화재위원회가 7월 부결한 안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자”며 “경북 영천과 운문댐, 경남 밀양댐 가운데 한 곳의 물을 울산에 공급하고 사연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 침수를 막자”고 주장했다. 영천에서 울산까지 국도를 따라 65km의 용수관로를 묻으면 사업비가 적게 든다며 구체적인 방법도 얘기했다.

송 전 위원장이 내놓은 것과 비슷한 방안은 8년 전 추진됐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2009년 12월 운문댐에서 울산까지 50km 구간에 용수관로를 매설해 하루 7만 t씩 물을 공급하고, 울산시는 사연댐 수위를 낮춰 침수를 막겠다고 발표했다. 총사업비는 1544억 원이었다.

하지만 경북 주민과 국회의원, 단체장의 반발로 무산됐다. 부산시가 경남의 남강댐 물 공급을 요구하고 있지만 성사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하늘이 뿌려준 빗물은 국민 모두의 재산’이라는 말은 댐 건설로 자신의 땅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사유재산권을 침해받는 주민이 보기에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송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여권의 울산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인사가 실패했던 암각화 보존 방안을 다시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출마용 얼굴 알리기’라는 여론부터 ‘정부와 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그렇더라도 송 전 위원장의 ‘의도’를 일단은 제쳐두자. 울산시민에게는 맑은 물을 공급하면서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는 것이 최상의 암각화 보존 방식이라는 것은 울산시도 인정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 묘수는 인접 지역 댐의 물을 공급받아야만 가능하다. 이 방식이 성사되지 않았기에 아류(亞流) 대책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여권의 ‘핵심’ 인사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최상의 방안을 정부에 촉구한 것은 그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송 전 위원장의 제안이 백가쟁명식 주장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지, 획기적인 해법이 될지는 정부가 울산 인근 지역을 설득할 의지가 있는지에 달렸다.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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