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상가 점포 권리금 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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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 조례 개정안 입법예고
서울시설공단 소유 2788곳, 임차권 양도-양수 근절 나서
“수십년 관행 지금껏 방치하더니…”
상인들 강력 반발… 집단행동 예고

1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지하쇼핑센터 모습. 이날 서울시가 지하상가 임차권의 양도를 금지하는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상인들은 반발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지하쇼핑센터 모습. 이날 서울시가 지하상가 임차권의 양도를 금지하는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상인들은 반발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시가 소유한 지하상가의 상인들은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권리금을 받고 상점을 넘길 수 없게 된다. 상인들은 “단체행동을 벌이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12일 임차권 양도 허용 조항을 삭제한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정종철 서울시 지하도상가팀장은 “조례의 양도를 허용하는 조항이 상위법인 ‘공유자산 및 물품관리법’에 위반한다는 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과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을 뿐 아니라, 고가의 불법 권리금과 전대(轉貸·빌려온 것을 다시 남에게 빌려 주는 것)를 양산하고 있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시설공단이 소유한 지하상가는 1967년 지어진 시청광장 지하상가를 비롯해 명동과 을지로, 강남을 포함한 25개 구역으로 모두 2788개 상점이 있다. 지하철 개통과 방공대피시설로 지하통로가 생겨나면서 형성됐다. 대부분 상인회가 초기 계약에 따라 1996∼1998년 점포를 서울시에 채납하면서 1998년 지금의 관리 조례가 제정됐다. 이 조례는 양도를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시 소유가 된 이후에도 고액의 권리금을 동반한 임차권 거래가 활발했다.

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해 임차권 양도·양수가 금지되면 상인들은 장사를 그만하더라도 권리금을 받고 임차권을 팔 수가 없다. 시와 계약이 끝나거나 중도 해지한 점포는 경쟁 입찰로 새 주인을 찾게 된다. 경쟁입찰제가 시작된 2011년 당시에도 서울시는 임차권 거래를 금지하려고 했지만 상인들의 반대와 시의회의 부결로 무산됐다.

상인들은 서울시의 이날 결정에 대해 “서울시가 감사원의 지적을 모면하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다시 들고나왔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하상가가 영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묵인해 온 권리금과 임차권 양도를 갑자기 금지하면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억 원대의 권리금이 오가는 강남, 서초구 반포 일대 지하상가 상인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하는 A 씨(52·여)는 “입주 때 지불한 권리금이 얼마인데 빈손으로 나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동인구가 줄어 쇠락하는 지하상가는 다른 이유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장사가 안 돼 접고 싶어도 시와의 계약기간 중에는 임차권을 양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조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장사를 그만두려면 위약금을 내고 계약을 해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10년 전 권리금 5000만 원을 내고 소공지하상가에 옷가게 ‘시드니’를 차린 김류숙 씨(62·여)는 “한 달에 옷 한 벌이라도 파는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장사가 안 되는 마당에 탈출구까지 막혀 버린 꼴”이라고 말했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 상인연합회 이사장은 “불과 사나흘 전에 1억 원이 넘는 권리금을 주고 입주한 상점도 여러 곳”이라며 “상인들이 초기 시설투자금(건설보증금)은 물론이고 개선비용까지 부담해 왔는데, 서울시는 이러한 기여에 대한 인정 없이 상위법 조문만 들이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권리금을 인정한 흐름과도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조만간 단체행동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명할 계획이다.

황태호 taeho@donga.com·강승현 기자
#지하상가#권리금#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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