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그을음 페트병 들고 “이런게 하루 12만병”… 충격요법 통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도쿄는 어떻게 푸른 하늘을 되찾았나

지난해 6월 도쿄의 인공섬 오다이바에서 바라본 시내 모습. 서울에서 자주 만나보기 어려운 푸른 하늘이다. 우익 성향으로 한국에서 ‘망언 제조기’라고 불리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는 도민들에게 맑은 하늘을 돌려준 공으로 13년 반 동안 지사직을 유지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지난해 6월 도쿄의 인공섬 오다이바에서 바라본 시내 모습. 서울에서 자주 만나보기 어려운 푸른 하늘이다. 우익 성향으로 한국에서 ‘망언 제조기’라고 불리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는 도민들에게 맑은 하늘을 돌려준 공으로 13년 반 동안 지사직을 유지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도쿄(東京)의 대기는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였던 1950, 60년대 급속히 악화됐다. 일본 최대 게이힌(京濱) 산업단지의 공장과 화력발전소, 그리고 늘어난 차량들이 오염물질을 대량 배출하면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빨래를 널면 저녁에 새카맣게 변했다. 미노베 료키치(美濃部亮吉) 도쿄 도지사가 1967년 당선됐을 때 내세운 구호가 ‘도쿄에 푸른 하늘을’이었을 정도였다.

당시엔 꿈처럼 여겨졌던 ‘푸른 하늘’이 요즘 도쿄에선 일상사가 됐다. 도심인 신주쿠(新宿) 도쿄도청에서 100km가량 떨어진 후지산이 또렷하게 보이는 날이 사흘에 하루꼴이다. 지난해 말 프랑스 파리 시내 미세먼지가 사회문제가 되자 안 이달고 시장이 나서 “도쿄를 모델로 삼아 파리에서 경유차 통행을 금지할 것”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로 도쿄는 미세먼지 문제를 극복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통한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뿌연 하늘’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도쿄는 어떻게 예전의 ‘푸른 하늘’을 되찾았을까.

‘경유차 NO 작전’ 전격 발표

“이런 미세먼지가 도쿄에서만 하루에 12만 병이나 나온단 말입니다!”

2000년 2월 4일 도쿄도청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당시 지사가 페트병을 들고 흔들자 기자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페트병 안에는 디젤(경유)차에서 배출된 그을음(미세먼지)이 담겨 있었다. 이시하라는 이어 “국가와 싸워서라도 디젤을 몰아내겠다. 우리가 지더라도 부끄러운 것은 중앙정부일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도쿄 도는 대기질이 악화된 1960년대 후반부터 중앙정부와 함께 대기오염 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그 결과 아황산가스(SO2) 등 오염물질 수치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뿌연 하늘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1999년 당선된 이시하라는 노후 경유차의 배기가스를 대기질 악화의 최대 원인으로 규정했다. 미세먼지 대부분이 경유차에서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경유차는 도쿄 도내 차량의 20%에 불과했지만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의 70%를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시하라는 당선 4개월 만에 ‘경유차 NO 작전’을 발표하고 경유차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국토교통성, 환경성, 경제산업성 등 부처 간 갈등으로 중앙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쿄 도가 먼저 치고 나간 것이다.

경유차 NO 작전은 △경유 승용차는 타지도, 사지도, 팔지도 않을 것 △대체 가능한 업무용 경유차는 의무적으로 휘발유차로 바꿀 것 △배출가스 저감장치 개발을 서두르고 장착을 의무화할 것 △경유를 휘발유보다 싸게 만든 정책을 고칠 것 △경유차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는 차를 조기에 개발할 것 등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이는 도쿄 도의 파격적인 정책에 자동차 관련 업계는 경악했다. 자동차 제조업체 모임인 일본자동차공업협회와 화물차 운송업자 모임인 전일본트럭협회는 ‘경유차가 악이냐’란 내용의 팸플릿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면서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시하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디에 가든 그을음 가득한 페트병을 들고 다니며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외치는 그는 언론 헤드라인을 자주 장식했다. 또한 이를 통해 여론을 점차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경유차 제조사 사장들을 불러 모아 “시간이 지날수록 도민들이 죽어 나간다. 딱 2년이다. 그 이상은 못 기다린다”며 빨리 저공해 차량을 개발하라고 엄포를 놨다. 자민당 간부들을 만나 경유차에 유리한 세제를 바꾸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미세먼지 10년 새 55% 줄여

2000년 1월 말 고베(神戶) 지방법원은 도로에서 발생한 배기가스로 주민들이 병에 걸렸다면 국가와 도로공단이 배상해야 한다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재발 방지 조치를 마련하라고 했다.

이시하라는 기회를 놓칠세라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도가 도민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경유차와의 전쟁에 더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전담 부서인 자동차공해대책부도 만들었다.

그해 말에는 노후 경유차의 도내 운행을 2003년 10월부터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7년 이상 된 트럭과 버스 등이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운행을 금지시키고, 이를 어기면 50만 엔(약 500만 원)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이었다.

일각에선 ‘주행 중인 차를 어떻게 일일이 단속할 수 있겠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이시하라는 시행 1년 전인 2002년 ‘위반 경유차 일소작전’을 발표했다. 경찰 출신 등으로 경유차 감시를 담당하는 ‘자동차 G맨’ 70여 명을 임명했다. 이들은 20대 이상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회사 3800곳을 일일이 돌며 규제 내용을 알렸고,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시행 후에는 도 전역을 순찰하며 수천 대를 단속했다. 고정형·이동형 카메라를 동원해 단속을 벌였고, 주민들의 신고를 받는 ‘검은 연기 스톱 110번’ 캠페인도 시작했다.

당근도 제시했다. 중소기업에 한해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 비용 절반을 보조했고, 추가로 돈이 필요하면 대출을 알선해줬다.

도쿄 도만의 정책으로 대기오염을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노후 화물차가 도쿄 도의 규제를 피해 우회도로를 주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지자체 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있었다. 이시하라는 수도권 지자체인 가나가와(神奈川) 지바(千葉) 사이타마(埼玉) 현 지사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규제와 단속을 공동으로 실시하자고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결국 이 지자체들도 비슷한 조례를 만들며 동참했다.

경유차 규제 흐름이 조성되자 정부도 배기가스 규제 강화 일정을 앞당겼다. 언론에서도 “초미세먼지(PM2.5)를 미국 수준으로 규제할 경우 도쿄 내 사망자가 연간 5000명 이상 줄어들 것”이라며 호응했다.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미세먼지(SPM·우리의 PM10과 유사한 기준)는 2005년부터 기준치(시간당 일평균이 ㎥당 0.10mg 이하이면서 시간당 수치가 ㎥당 0.20mg 이하) 이하로 나타났고, 초미세먼지의 연중 평균치는 2001년부터 10년 새 55%나 줄었다. 도쿄에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규슈대 대기해양환경연구센터의 다케무라 도시히코(竹村俊彦) 교수에 따르면 1990년대 도쿄의 시야불량(대기 중 먼지에 의해 시야가 10km 미만인 경우) 연간 누적시간은 3000시간(1년 전체는 8760시간)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100시간 미만으로 줄었다. 초미세먼지 감소의 영향으로 도쿄 도내 뇌중풍(뇌졸중) 사망률이 8.5% 줄었다는 연구 결과(오카야마대 연구팀)도 나왔다.

초미세먼지 대책 늦어

도쿄 도가 경유차 대책을 서두를 때 서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김용표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05년 환경부가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을 만들 때 도쿄의 규제를 참고했지만 당시 미세먼지만 규제하고 질소산화물 규제는 빼놨다”고 전했다. 이후 초미세먼지가 문제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질소산화물 규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도쿄가 주변 지자체와 함께 규제를 만들고 단속에 나섰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우 현재 수도권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는데 강원 영서지역, 충북까지 함께 광역 대기오염의 관점에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이도 있다. 도쿄의 경우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자체 노력만으로 하늘을 맑게 할 수 있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의 경우 중국 요인이 대략 50∼60% 된다고 한다. 다케무라 교수는 “도쿄와 달리 규슈 지역은 서울처럼 중국의 경제발전이 본격화한 2000년 이후 초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과감하게 시행하면서 중국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서울의 푸른 하늘을 되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도쿄#도쿄 대기#도쿄 미세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