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연의 취재 그 후]잊지 않겠다는 약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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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나 리조트 사고 현장사진
마우나 리조트 사고 현장사진

“기억 속에 사라졌던 그 사고로 이렇게 고통 받고 있었군요. 꼭 완쾌하길 바랍니다” “잊고 있었네요. 어서 건강히 회복하시길. 그리고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연우학생, 희망을 잃지 마세요. 화이팅!”

17일은 마우나리조트 참사 3주기였습니다. 본보는 이날 참사 이후 3년째 입원치료 중인 장연우 양(23·미얀마어과)의 근황을 전했습니다(본보 2월 17일자 A14면 참조). 기사에는 위와 같은 댓글이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어머니, 연우를 응원하는 댓글이 수백 건이에요.”

연우 어머니께 기사를 보내드리기로 약속한 기자는 그날 아침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기사 링크를 전송했습니다.

“감사해요^^”

곧 답장이 왔습니다. 문자를 보자 ‘사고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다’며 눈물짓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간절히 바랬습니다. ‘어머니가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힘을 내실 수 있기를’ 하고 말이죠.

마우나리조트 참사는 사실 2014년의 비극을 알리는 서막이었습니다. 참사 2개월 후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2014년 한 해에만 무고한 학생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마우나리조트 참사 유가족, 생존자들은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고로 세상을 뜬 부산외국어대 학생 9명의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자녀를 가슴 속에 묻은 채 하루하루를 견딥니다. 생존 학생들은 아직도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연우 양은 생존자 중 유일하게 심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수술만 서른한 번. 흉터수술, 욕창수술, 골반수술 등 앞으로도 여러 차례의 복원 수술이 남아 있습니다.

● 악플이 던진 또 한번의 상처

그날 저의 바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어머니께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기자님. 악플들 삭제가 가능한가요? ‘생을 포기하라’는 등 해도 너무하네요.”

놀란 마음에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다시 꼼꼼히 훑어봤습니다. 응원의 댓글들 사이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플이 숨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감성팔이 짓을 그만하라’고 했고, 누군가는 보상금 문제를 들먹이며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았습니다. 기사에 실린 병실 사진을 두고 ‘연출한 것’이라는 글까지 있었습니다.

악플은 수적으론 극히 일부였습니다. 또 악플을 단 사람을 꾸짖는 댓글도 여럿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치 않습니다. 정말 힘들 땐 누군가의 조롱 섞인 말 한 마디에도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연우가 댓글을 볼까 불안해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아직도 남은 치료 과정이 많아 힘겹게 살고 있는데 이럴 땐 정말 다 놓아버리고 싶다. 너무 우울해진다”고 털어놨습니다. 그 어떤 말들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답변들은 초라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 잊지 않겠습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연우 양의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환자복에 가려진 왼쪽 다리와 엉덩이 허벅지 등에선 살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피부는 한 껍질 벗겨진 것처럼 뜨거운 물에 갓 데인 것처럼 빨갰습니다. 욕창이 번지고 있지만 당장 수술할 수도 없습니다. 조각났던 골반뼈가 틀어져 굳는 통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틀어진 뼈가 방광을 눌러 극심한 통증을 불러옵니다. 그러다보니 재활치료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연우 양은 “인공 골반으로 대체라도 해달라”며 의사선생님께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간단치 않은 문제입니다. 골반엔 온갖 신경들이 붙어 있어 자칫 수술이 잘못되면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래도 ‘사진이 연출됐다’고 말한다면 그건 ‘고통이 가려진 연출’이겠죠.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빨리 회복될 텐데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마우나리조트 참사의 책임이 있는 코오롱 측과의 합의는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입원치료 과정에서 오고 간 많은 일들에 연우 양과 어머니는 마음의 상처가 컸습니다. 솔직히 말해 두 모녀는 “이젠 지쳤다”고 했습니다. 감당하기 벅찰 정도라고 했습니다. 기사에 ‘희망’이란 키워드를 언급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헛된 희망’이라도 잃지 않기 위한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그건 ‘마우나리조트 참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고를 잊지 않고, 이 사고로 떠나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개념 없는 악플이나 던지고 사라지는 게 아닌,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목소리를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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