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정체 주범 된 도심 지하차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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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90년대 교통난 해소 위해 건설… 이젠 지상도로 병목현상 부추겨
2000년이후 서울서만 4곳 평면화… 천호지하차도 매립 타당성 조사

“차로 5개 중 지하차도가 2개를 차지하니까 이렇게 막힐 수밖에 없어요.”

20년 경력의 택시 운전사 김모 씨(56)가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지점 중 하나로 서울 강동구 천호 사거리를 꼽은 이유다. 그가 지목한 정체의 원인은 ‘천호지하차도’다. 김 씨를 만난 18일에도 서울 송파구와 경기 하남 등에서 온 22개 노선의 버스와 백화점, 대형 마트, 지하 공영주차장의 진·출입 차량들이 지상 3개 차로에서 병목현상을 일으키며 뒤엉켜 있었다. 강동에서 온 차량이 잠실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버스는 지하차도 입구 앞에서 중앙버스전용차로가 끊긴 탓에 가로변 정류소로 이동하느라 전 차선을 횡단하며 곡예 운전을 했다.

천호지하차도는 도심과 강동 지역을 빠르게 잇고자 1997년 건설됐다. 총연장 355m.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애물단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진·출입부 설치로 천호대로 횡단보도가 없어져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고, 중앙버스전용차로 단절과 병목현상으로 교통난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지하차도 위 지상 도로를 달리는 버스와 승용차는 심할 때 시속 10km를 내는 것조차 힘겹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9년 지하차도 철거를 검토했다. 하지만 경제성 때문에 없던 일이 됐다. 2014년 구리암사대교 개통 등 주변에 대체 도로가 속속 건설되면서 이용 차량이 줄었다. 그러자 다시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고 올 7월까지 철거 여부의 결론이 내려질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간선 기능을 가진 왕복 4차로의 대형 지하차도 철거는 전례가 없다”며 “교통은 물론이고 경제성과 주변 환경까지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에 따르면 1980, 90년대 교통난 해소를 위해 도심 곳곳에 지하차도가 건설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철거되는 지하차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하차도가 지상 구간의 심한 정체를 일으킬 뿐 아니라 횡단보도 간격을 넓혀 보행 안전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만 2000년 이후 동교 장지 신월 의주로 등 지하차도 4곳이 전체 또는 일부 철거됐다. 경기 구리 동두천 하남시 등에서 같은 사업이 진행 중이다.

도심의 경우 지하차도 철거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하차도가 사라지면 병목 현상 등으로 인한 혼잡을 줄일 수 있다. 차량 흐름이 원활해지지만 과속 우려는 크지 않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등이 새로 설치돼 운전자가 서행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보행 환경은 더 안전해진다. 또 중앙버스전용차로와 정류소 설치가 가능해져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해진다. 1984년 개통돼 합정동과 연희동을 이었던 양화로 동교지하차도가 2006년 철거 후 중앙버스전용차로로 바뀐 게 대표적이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속 기능이 필요한 외곽 간선도로에서는 지하차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지만 도심에서는 지하차도 철거가 오히려 보행자 편의 확대 등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반드시 필요한 지하차도도 많지만 시대가 변하며 목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곳도 늘고 있다”며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중요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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