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건보 부당청구 年6000억 새는데…구멍 막을 뾰족수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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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환수결정액 6204억… 5년새 5배로 급증

 지난해 건강보험 부당청구액이 처음으로 6000억 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부당청구로 적발돼 환수하기로 결정한 금액(환수결정 금액)은 6204억3100만 원으로 5년 전인 2011년 1240억1800만 원의 5배로 늘어났다. 1인당 연간 건강보험료가 86만 원(2015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72만1431명이 낸 보험료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간 셈이다.
○ 건보재정 위협하는 부당청구

 비양심 병·의원, 한의원이나 약국이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타내는 수법은 다양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환자에게 받은 뒤 건보공단에도 요양급여를 이중 청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부당청구로 적발된 서울 강남구의 미형한의원은 비급여인 미용 목적의 가슴 확대 침술을 한 뒤 그 비용 전액을 환자에게 받고도 이 환자가 어깨 통증 등 질병으로 진료를 받은 것처럼 속이는 수법으로 36개월간 요양급여 2억9200만 원을 부당하게 챙겼다.

 대구 북구의 한 의원은 환자가 실제 의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은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조작해 31개월간 요양급여 8130만 원을 부당하게 챙겼다가 지난해 적발됐다. 적발에 대비해 가족, 친인척을 가짜 환자로 내세우고 실제 진료를 받은 것처럼 모든 기록과 말을 맞추는 곳도 적지 않다.

 요양기관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하거나 의약품을 처방, 조제한 뒤 비용 일부는 환자에게 받고 나머지는 건보공단에 청구해 요양급여를 받는다. 요양급여를 지급하기 전에 전산상으로 급여 청구가 적법한지만 확인하기 때문에 실제 어떤 진료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비양심 요양기관들은 이런 빈틈을 노리고 국민들이 낸 건보료를 부당하게 받아 잇속을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의사 명의만 빌린 ‘사무장병원’의 부당청구 적발건수가 크게 늘었다. 2009년 9억6000만 원이던 사무장병원의 부당청구 환수결정 금액은 지난해 5675억2200만 원으로 급증했다. 전체 부당청구 환수결정 금액도 2013년 2521억 원, 2014년 4487억 원, 2015년 5399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건보공단은 부당청구를 적발하기 위해 의심되는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방문확인을 실시하고 있다. 이때 부당청구가 드러나거나 요양기관이 방문확인을 거부하면 보건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한다. 복지부는 부당청구 금액에 따라 1년 이내 업무정지, 10개월 이내 면허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린다. 거짓 청구를 한 경우에는 형사 고발하고 명단도 공개한다.
○ 부당청구 조사권한 놓고 공단과 의료계 갈등

 문제는 건보공단과 복지부가 적발한 부당청구 규모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 지난해 건보공단이 부당하게 요양급여를 타낸 병·의원을 적발하기 위해 방문확인한 요양기관은 903곳으로 전체 요양기관(8만6050곳)의 1% 수준이다. 복지부가 현지조사한 요양기관은 이보다 적은 813곳에 그쳤다. 조사 인력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적발되지 않은 부당청구액까지 포함하면 연간 최대 2조∼4조 원의 요양급여가 새어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전체 요양급여(48조 원)의 4∼8%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민들이 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매달 낸 피 같은 건보료가 비양심 요양기관이나 사무장병원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 셈이다. 또 부당청구액 중 건보공단이 환수하는 징수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부당청구를 근절하고 징수율을 높이려면 조사권한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계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 자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 이어 지난해 12월 말에도 방문확인 대상이던 의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의료계에서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과 복지부 현지조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공단 직원들이 적발 실적을 올리려고 무리하게 방문확인을 하는 경향이 있어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는 의료인이 적지 않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에 건보공단 관계자는 “요양기관이 방문확인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강압적이라는 주장은 억지”라며 “부당청구 확인은 건보공단의 책임이자 권한이다. 의료계 주장은 국민이 낸 건보료가 제대로 지급됐는지 아예 확인조차 하지 말라는 건데 말이 되느냐”고 일축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국민에겐 세금과 다름없는 건보료가 부당하게 쓰이는지 최소한의 감시조차 받지 않으려는 의료계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든 부당청구를 적발하는 건 불가능한 만큼 처벌을 강화해 사전 예방 효과를 높이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 방문확인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 부당청구가 의심되는 요양기관의 진료기록부 등 서류 제출을 요청하거나 해당 요양기관을 방문해 청구가 적법했는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제도. 행정처분이 뒤따르는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와 달리 강제성은 없어 요양기관이 자료 제출이나 방문확인을 거부할 수 있다. 건보공단은 요양기관이 거부하거나 부당청구가 드러나면 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한다.
#건보#환수#부당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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