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재량사업비’ 선심성 예산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지역구 숙원사업-민원 해결 용도… 1인당 최소 年 1억원 이상 집행
투명성 없어 ‘쌈짓돈’으로 전락… 일부 의원 리베이트 혐의 수사 받아

 지방의원들의 이른바 ‘재량사업비’(소규모 민원사업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량사업비는 도의원이나 시군의원이 지역구 숙원 사업이나 각종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 용도를 지정하지 않고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 선심성 예산으로 분류된다. 공식적으로 재량사업비 명목의 예산은 없지만 전북도의회의 경우 의원 38명이 1년 동안 임의로 쓸 수 있는 예산은 190억 원가량으로, 의원 1인당 5억5000만 원 정도이다. 이 가운데 도청 예산은 4억5000만 원, 도교육청 예산은 1억 원. 시군의원은 지자체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억 원 안팎이다. 전체 의원 수가 25명인 익산시의회는 올해 의원 1인당 1억5000만 원씩 총 37억5000만 원의 재량사업비를 편성, 집행했다.

 재량사업비는 주민과 직접 접촉이 많은 지방의원들이 골목길 정비, 경로당 보수, 농로 포장, 학교 화장실 개선 등 다양한 민원을 빠르게 해결하는 일부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엄청난 예산이 지방의원의 생색내기용으로 사용되고 일부 의원의 경우 리베이트 창구로 삼는 등 역기능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감사 또는 심사해야 하는 지방의회의 기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회가 자치단체 예산 집행 과정에서 ‘거름막(필터)’ 역할을 못하게 막고 지방의회의 행정 종속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전주지검은 9일 전북도의회 A 의원이 재량사업을 통해 업체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보고 A 의원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해 재량사업비와 관련된 서류와 컴퓨터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A 의원이 재량사업을 자신이 지목한 특정 업체에 주도록 전북도에 요청한 뒤 해당 업체에서 10∼30%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재량사업비는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후부터 계속돼 왔다. 2011년 감사원 감사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 등으로 예산 전액이 삭감되기도 했으나 행정이 예산 내역을 심사하고 심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등 약간의 보완책을 마련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전북도의회는 도의원의 재량사업비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내년 예산에 사업비를 편성했다. 익산시의회 등 대부분 기초의회도 의원 1인당 1억 원 안팎을 편성했다.

 지방의원들은 재량사업비를 자신의 지역구 소규모 현안 사업에 사용하거나 관내 체육단체 행사진행비, 법인 단체 지원 등에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의원은 재량사업비를 사용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거나 자신과 관련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은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 몫을 가져다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시의회에서는 재량사업비 사용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 시의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 전북도의원도 재량사업비 사용 명세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동료 의원들로부터 ‘혼자 깨끗하고 투명한 척하지 마라’는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참여연대 관계자는 “의원 재량사업비는 의원들이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 주변을 챙기는 예산, 사적 이익을 취하는 쌈짓돈으로 전락했다”며 “모든 예산은 검증 절차를 거쳐 집행되는데, 유독 의원 재량사업비만 검증 절차 없이 집행된다”고 주장했다. 익산참여연대는 검찰이 부패의 온상인 재량사업비를 도의회는 물론이고 14개 시군 기초의회까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