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상근]정유라 승마에서 대통령 낙마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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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의 ‘승마술에 대하여’ 기수는 군주, 말은 백성… 군림하는 군주는 신뢰 못 받아
지금까지 말은 문제가 없었다… 기마민족 기상 되살릴 기수 없나
한 번 기수를 낙마시킨 말은 또 반복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돌이켜 보면, 말(馬)이 시작이었다. 최순실의 딸이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헌정사상 초유의 대혼란이 시작됐다. 승마로 딴 메달을 들고 입시 면접장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촛불 민심은 대학입시를 앞둔 청소년에게까지 옮아 붙었다.

 그러나 정작 정유라의 승마술은 한심한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그 유명한 이화여대 리포트에서 정유라는 ‘고삐에 자꾸 기대를(는) 말을 쉽게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서 ‘강하게 세우기. 해도 해도 안 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웬만하면 비추함’이라 답함으로써 승마술의 기본에 무지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원래 승마는 아무나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승마술은 전통적으로 왕자의 교육으로 간주되어왔다. 혈통 좋은 명마를 구입하고 그 말을 훈련시키는 것은 큰 비용이 들거니와, 어릴 때부터 승마술을 연마한다는 것은 장차 군주가 될 왕자가 자기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리더십 교육의 일환으로 간주됐다.

 승마술에서 기수(騎手)는 통치자나 군주를 뜻한다. 말은 곧 백성을 의미한다. 승마술은 완력이나 채찍으로 말 타는 기술이 아니라, 기수와 말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호흡을 맞추는 기술을 말한다. 군주는 백성을 완력이나 채찍으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기원전 431년∼기원전 354년)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직계 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승마술에 대하여’란 책도 남겼다. 역사상 최초의 승마술에 대한 교범인 동시에 기수와 말, 즉 군주와 백성의 상호 관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크세노폰은 이 책에서 먼저 좋은 말을 고르는 법부터 자세히 설명한다. 성격이 온순한 말을 구입해 집으로 데려왔을 때 기수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마구간을 지어주는 것이다. 말은 자기 먹이를 다른 동물이나 말이 훔쳐 가면 극도로 예민해지므로 말구유를 안전하게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훈련시킬 때 기수는 절대 화가 난 상태에서 말을 타서는 안 된다. 크세노폰의 표현을 직접 빌리자면 ‘화는 무분별한 것이며, 후회할 짓을 사람이 종종 저지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군주와 백성의 관계도 그렇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군주는 백성들 앞에서 화를 내선 안 된다. 만약 말이 어떤 물건을 두려워하면 기수는 말 앞에서 그 물건을 직접 만져 말이 더 이상 겁을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을 타고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기수는 말 등 위에서 절대로 ‘의자에 앉는 것처럼 앉지 말고, 마치 양다리를 벌리고 똑바로 서 있는 것처럼 앉아야 한다’. 기수가 의자에 앉는 것처럼 말 등에 걸터앉으면 말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기수를 짐짝처럼 간주하게 된다. 이는 군주와 백성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백성을 무시하고 그들의 등 위에 올라타서 군림하는 군주는 백성의 존경을 절대로 받지 못한다. 군주는 백성들 등에 올라타고 권력의 의자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허벅지에 힘을 주고, 늘 긴장하는 기립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처음부터 장애물을 잘 뛰어넘는 말은 없다. 주저하는 말을 훈련시키기 위해 기수는 먼저 말에서 내려 직접 장애물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어려운 난관 앞에 섰을 때 군주는 백성들 앞에서 솔선수범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기수가 흉갑으로 몸을 보호하듯 말에게도 튼튼한 갑옷을 입혀 주어야 한다. 특별히 말의 머리와 가슴, 넓적다리를 보호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말의 넓적다리는 반드시 ‘기수의 넓적다리로 보호해야 한다’. 자신의 몸으로 말을 보호하는 것이 기수의 사명인 것이다. 군주와 백성의 관계도 그와 같다.

 정유라의 승마에서부터 시작된 국가적 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낙마(落馬)로 이어졌다. 크세노폰이 강조했던 승마술의 기본을 몰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기수를 등에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 전임 기수의 낙마로부터 뼈저린 교훈을 얻고, 만주 벌판을 달렸던 기마민족의 기상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탁월한 기수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말은 문제가 없었다. 언제나 승마술의 기본이 부족한 기수가 문제였다. 대권을 꿈꾸는 자들에게 승마술의 기본을 권한다. 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한 번 기수를 낙마시킨 말은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수를 낙마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최순실#정유라#승마#이화여대 부정입학#크세노폰#승마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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