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정재락]軍의 거짓말, 접촉 차단, 불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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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거짓말, 접촉 차단, 불통….’

 육군 제53사단 제7765부대 제2대대 울산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로 현역 사병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13일. 사고 직후부터 군 당국이 보여 준 행태는 ‘이런 군을 어떻게 믿고 자식을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6시간이 흐른 이날 오후 5시 20분경 울산대병원 응급실 앞. 사단 정훈공보참모인 주모 중령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 조립식 건물은 비어 있는 상태였고 폭발을 일으킬 만한 인화성 물질도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고 당시 인근 주민들에게도 들릴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있었고 인근을 지나던 병사 23명이 부상했다면 화약 등 인화성 물질이 있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거듭된 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폭발물이나 인화성 물질이 없었다”라고 재확인했다. 브리핑이 이후 ‘조립식 건물 안에 쌓아 둔 연습용 수류탄이나 폭음탄 화약이 원인’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다.

 기자가 확인을 위해 주 중령에게 10차례 전화를 했지만 휴대전화에 설정해 둔 유행가만 흘러나올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자신이 한 브리핑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즉시 정정해야 하는 게 공보참모의 중요 임무다. 국민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는 공보참모가 만약 고의로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다.

 앞서 사고 발생 1시간여가 흐른 13일 오후 1시경 군부대 앞. 부대 인근에 산다는 할아버지(80) 할머니(79)가 함께 찾아와 “두 달 전 이 부대에 입대한 외손자 안부가 궁금하다”라며 위병소 군인에게 사정을 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발만 구르고 있었다. 가족이 10여 명으로 늘어나고 항의가 잇따르자 군은 1시간여 만에 부상 여부를 확인해 줬다.

 축소, 은폐 의혹도 있었다. 당초 군 당국은 사고 경위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6명 부상’이라고만 밝혔다. 그 사이 울산소방본부는 ‘군부대 폭발 사고 추정 다수 사상자 발생’, ‘사상자가 아니고 부상자로 정정’, ‘총부상자 23명’으로 30분 동안 세 차례나 수정된 자료를 발표했다. 경찰은 17명 부상으로 발표해 가족들의 혼선과 불안을 가중시켰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인근 주민들은 22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이 부대에서 직선거리로 3km 떨어진 육군 해안경계부대에서는 1994년 9월 장교 2명과 부사관 1명 등 현역 군인 3명이 수류탄 3발과 실탄 100여 발, M16 소총 2정을 들고 탈영해 자칫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한 주민은 “무조건 덮으려고만 하는 군 당국의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군부대 내 사고는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
#울산 예비군 훈련장 폭발#공보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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